추석연휴가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얼굴 보기 힘든 가족들과 모였으니 다정하고 행복해야 맞는데 그런 것만 아니죠. 그리웠던 마음이 거짓이었던 건 분명히 아닌데 결혼은 언제쯤, 아이는 언제쯤, 집장만은 언제쯤, 이런 반복되는 질문을 듣다 보면 달아나 숨을 곳이 필요해요. 혼자 앉아있을 낡은 소파가 필요하죠. 그래야만 내 마음 속에 작고 빛나는 흰 돌같이 단단하고 진실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어요. 남들이 원하고 구했던 것들 말고 내가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진짜 마음. 그런 마음을 얻기 위해 시인은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에 불을 켭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식탁에 촛불을 켜는 것은 ‘언제든지, 누구나 우리 옆에 앉아도 좋다’는 허락의 표시라고 말했대요. 연휴 내내 식탁에 모여들 있었으니 오늘은 시인처럼 혼자 촛불을 켜고 내 자신이 곁에 와 앉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줘야겠어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