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 부산서 단독 회동 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의견 접근"
金, 오픈프라이머리 우회로 선택
친박 "대통령 없는 틈 타 쿠데타"
최고위원회 보이콧 등 거센 반발
野는 "혁신위안 관철시킨 것"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추석 연휴 기간 ‘안심번호를 이용한 국민공천제’에 합의하면서 정치권에 회오리 바람이 일고 있다. 김 대표가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추진하기 위해 전화 기반의 변형된 국민경선제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여야가 최종 합의에 도달한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지형의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오픈 프라이머리를 강력 반대하는 친박계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해 여야 합의추진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당장 친박계가 “대통령이 없는 틈을 타서 김 대표가 또다시 사고를 쳤다”며 최고위원회를 보이콧하는 등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여권의 정면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문무’ 부산 회동이 되살린 오픈프라이머리
여야 대표는 28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전격 회동, 내년 20대 총선에서 적용할 공천 방식과 관련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도입에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 김 대표는 회동 직후 “‘안심번호’를 이용한 국민공천제 도입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면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동은 김 대표의 제안을 문 대표가 받는 형태로 이뤄졌으며 측근들도 회동 장소와 시간을 모를 정도로 철통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여야 대표는 이날 1시간 40분가량 오찬을 겸한 단독회동에 이어 공식 브리핑도 가졌다. 김 대표는 브리핑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하되 일부 정당만 시행하게 될 경우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법으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대표는 또 정치 신인들을 위해 예비후보 등록기간을 선거일 전 6개월로 연장하고, 예비경선 홍보물을 배포할 수 있는 대상을 전세대로 확대하기로 했으며, 신인·여성·청년·장애인 등을 위한 가산점 부과를 법에 근거를 두고, 불복에 대한 규제도 법으로 규정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합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추진하던 김 대표가 현실적 한계를 감안해 ‘전화 기반의 국민공천제’라는 우회로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내놓은 안심번호제를 통한 국민공천제 방식을 관철시킴으로써 '상호 절충안'을 도출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 드린다는 데는 여야 모두 찬성하는데,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라는 방식에 야당이 응하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 안심번호를 사용한 여론조사 방식의 이른바 '전화 오픈프라이머리'라는 대안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 등 선거제도 개선책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농어촌 지역구 조정을 비롯한 지역구ㆍ비례대표 의석 비율 문제 등 나머지 쟁점 현안도 합의를 보지 못해 향후 논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 ‘전화 오픈프라이머리’에 친박계 총공세
하지만 여야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는 새누리당 내부에서부터 반발에 직면했다. 김 대표가 추석 연후 마지막 날인 29일 오전8시 문 대표와 합의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지만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보이콧하면서 오히려 정면충돌로 번지는 분위기다.
이날 최고위에는 친박 핵심인 이정현 최고위원만 참석했으며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김태호ㆍ이인제 최고위원은 불참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 의원도 “친박계가 오늘 회의를 보이콧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외에서는 친박계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김 대표를 비난하고 나섰다. 친박계 핵심인사의 한 명인 조원진 원내 수석부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야당의 프레임에 걸려들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2004년 4ㆍ15 총선 패배 이후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전승(全勝)했는데, 전패(全敗)한 야당의 손을 들어준 격”이라며 “전승한 당이 전패한 당의 공천제도에 손을 들어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대통령 정무특보도 언론 인터뷰에서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며 “지금껏 논의해 온 오픈프라이머리와 다소 변형된, 거리가 있는 공천제도인 것 같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원유철 원내대표까지 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당 대표와 강하게 맞서는 등 당내 분란 조짐이 일기도 했다. 원 대표는 “문 대표와 합의 전에 최고위나 의원총회 등에서 미리 충분히 설명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 그런 절차적 측면에서 아쉽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고 해명 했지만 불씨까지 제거되진 않는 분위기다.
친박계 의원들은 특히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선상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대권욕에 사로잡힌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공격했다.
친박계 반발이 거세지자 김 대표는 “최종 합의는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 대표는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론으로 결정한 안심번호 공천제를 덥석 받았다는 새누리당 안팎의 지적에 대해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는 새정치연합 고유의 제도가 아니다. 안심번호는 이미 시행중”이라며 “새정치연합 고유의 주장을 내가 받는 것이란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고 해명했다.
●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김 대표의 운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라는 우회로를 통한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29일 최고위원회에 이어 30일 의원총회에도 여야 대표 합의를 의제로 올릴 계획인 가운데 의총을 통과하면 김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도리어 확고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하다. 당장 친박계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돼 의총 통과는 고사하고 충돌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엔총회에서 돌아오는 박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수도권 지역의 새누리당 의원은 “친박계의 강력 반발에 밀릴 경우 김 대표는 또 한번 정치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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