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수류탄 등 수거 탄약 30여발
철원·양구군 '폭발 트라우마' 호소
군 사격장 이전 등 근본 대책 감감
‘전처가 만나고 있는 남자를 죽이겠다’며 수류탄을 들고 사라졌다 검거된 퇴역군인 사건 이후 군 당국의 허술한 탄약류 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잊혀질 만하면 강원 철원군과 양구군 등 접경지에서 강한 살상력을 갖춘 탄약이 발견돼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치는 미흡해 주민들이 불안감이 여전하다.
29일 철원경찰서에 따르면 전처와 싸움 끝에 수류탄 안전핀을 뽑고 철원군 서면 야산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지난 24일 붙잡힌 전직 부사관 이모(49)씨는 M-26수류탄을 9발 갖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 사용하던 수류탄이라고 해도 여러 발이 한꺼번에 떠지면 집 한 채는 날려버릴 수 있을 만한 위력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능이 버섯을 캐다가 수류탄을 발견해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군 당국의 살상용 탄약 관리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입수경위를 자세히 따지지 않더라도, 제때 수거되지 않은 폭발물을 버젓이 민간인의 손에 들어간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철원군의 한 주민은 “과거 수류탄으로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사고를 당하는 등 마을주민 대부분이 탄약 폭발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 수류탄이 무더기로 또 발견됐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뿐 만 아니라 강원 접경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심심치 않게 불발탄이 발견되거나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 주민들은 수 차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지 몇년이 지나도 군이 사격장 이전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철원군 환경자원사업소에서는 쓰레기 분류작업 도중 유탄으로 추정되는 군용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당시 작업반장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으나 폭발물이 외부로 유출돼 사고로 이어져 군 부대의 화기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
앞서 2012년 4월에는 양구군 팔랑리 민가에서 대전차 고폭탄이 폭발해 산불감시원이 숨졌다. 심지어 당시 “포 사격장과 민가를 분리하는 철조망이 없는 것은 물론 심지어 냇가에 불발탄이 둥둥 떠다닐 정도”라는 주민들의 증언이 나왔다. 사고 이후 군 당국은 팔랑리 포 사격장 이전을 모색하고 있으나 지난 18일 열린 설명회가 소득 없이 끝나는 등 주민들의 불신은 여전하다.
강원지방경찰청 조사 결과, 올 들어 도내 접경지에서 수거된 수류탄 등 살상이 가능한 탄약은 30발 안팎이다. 그러나 접경지역 주민들은 이 수치를 훨씬 웃도는 탄약이나 포탄이 야산과 민통선 인근에 있을 것으로 보고 군 당국에 “통제권을 벗어나 주민안전을 위협하는 탄약수거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은성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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