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KTX를 탔다. 시트 머리 커버에 이른바 ‘노동개혁’을 선전하는 정부의 구호가 적혔다. 그래야 미래가 산단다. 도대체 산업화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97년 IMF체제 이후 늘 만만한 노동계와 서민만 사회적 부담을 지며 온갖 책임을 떠안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임금피크제라는 것도 본디 수명이 늘면서 노동 가능시간이 함께 늘고 기업에서는 중견사원들의 지식, 경험, 노하우, 관계 등 다양한 자산을 사용하고 싶지만 연차가 늘수록 임금이 높아서 부담스러운데, 노동생산성이 가장 높고 자녀의 대학 진학이나 결혼 등으로 가장 지출이 많은 시기에 임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고 그 이후로는 줄여나감으로써 고용주와 고용자가 윈윈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앞의 것은 싹둑 자르고 뒤에서 임금이 깎여가는 것만 강조한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월급을 잘라 자녀에게 나눠주며 일자리는 늘리되 ‘평등하게 가난해지는’ 삶을 강요한다. 대다수 서민들을 비정규직의 삶으로 내몰 게 뻔한데도 자신들의 약속만 믿으란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부터 사과해야 옳다. 국민을 바보로 알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이런 뻔뻔함이 없다. 불행히도 이 모습이 지금 대한민국 1%의 민낯이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항구에 잠시 들렀다. 여전히 해경 간판이 걸렸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발상도 한심하거니와 그 뒤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로드맵도 없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사과 한마디도 없다. 오직 자기네들 권력 유지만 관심 갖는다. 120여년 전 상황과 너무나 흡사한데도 허겁지겁 외국에 나간 뒤 돌아와서는 온갖 용비어천가만 난무한다. 국민이 정신차리고 알아야 할 것은 감추고 자화자찬뿐이다. 그러다 정작 일이 터지면 전부 나 몰라라 내뺄 건 자명한 일이다. 저들이 언제 책임 제대로 진 적이 있었던가.
페이스북에 어느 분이 올린 글이 크게 공감을 불렀다. 임진왜란에는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구했는데 병자호란 때는 왜 잠잠했는가에 대한 분석이었다. 물론 전자는 7년의 전쟁이고 후자는 두 달에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공신책봉을 하면서 실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선무공신은 불과 18명에 불과한 반면 도망가듯 한 몽진을 따른 이유만으로 공신에 책봉한 호성공신은 무려 86명이었을 뿐 아니라 의병장들이 자신의 권력을 약화시킬 요인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수많은 의병장들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기까지 했던 일을 보라. 그런 상황에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항구에서 해경 간판을 보면서 해경이 민간잠수사들을 고발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관직에 있는 이들 가운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난 이가 있었는가? 심지어 책임질 당사자가 영전까지 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생업 밀어놓고 달려온 이들에게 떠넘기고, 심지어 작업을 방해하기까지 했던 걸 국민들도 안다. 그런데 그들을 해경이 고발해서 재판을 받는다. 도대체 얼마나 국민을 바보로 알면 이 지경까지 저지를까. 오죽하면 국정감사장에서 한 민간잠수사가 이렇게 외쳤다. “다음부터는 이런 참사, 재난이 일어나면 국가가 알아서 하셔야 할 겁니다. 국민들 부르지 마십시오!” 페이스북에 올린 이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천지에 이런 나라는 없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을 협박하거나 출연금 내놓으라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미 시중은행 몇 곳에서는 직원들에게서 갹출해서 기금을 상납하는 움직임이 있단다. 말로는 ‘늘 한가위만 같아라’ 외치지만 지금의 한가위는 그런 말도 사치가 되었다. 청년들이 명절에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피난’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외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며 새마을 정신을 전파한단다. 그러니 국사 국정교과서 시도가 결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라는 지적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1%에게만 비치는 게 아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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