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두 마리가 눈높이로 날아들었다. 위험할 건 없지만, 살짝 움찔한다.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도시 비둘기의 습성. 토실토실 살이 올랐으나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쓰레기 더미에 부리를 박거나 취객의 토사물을 뒤적이는 모습 따위를 자주 봐왔기 때문일 거다. 분명 새의 꼴을 갖췄으되, 하늘을 훨훨 나는 걸 잘 볼 수는 없다. ‘비둘기는 하늘의 쥐’라는 노래가 있던가. 아무튼 별로 상서로운 기분은 아니다. 로드킬 당한 쥐나 고양이의 사체를 쪼고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히말라야 인근에선 사람의 시체를 독수리 떼에게 먹이는 조장 풍습도 있지만, 그만큼 영험하거나 성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그저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부유하는 생태계의 엔트로피 같다. 헤밍웨이는 빈한한 시절, 비둘기를 잡아먹었다고도 한다. 날개가 있으되 하늘 아닌 땅을 배회해야 하는 무슨 저주라도 내린 것일까. 그렇게 따져보면 일종의 유배당한 새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념 끝에 다시 골목 모퉁이에 모인 비둘기 떼를 본다. 수선스럽게 땅을 쪼고 있다. 통통하나 아파 보이고, 모여 있으나 각각이다. 문득 누군가 떠오른다. 마음 깊은 곳에 날개를 숨겼으나 날 수 없고, 집이 있으나 늘 거리를 떠돌며 하늘을 선망해야만 하는 사람들. 조금 우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최근, 시인들을 너무 많이 만난 탓일 거다. 날 수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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