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도와 주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 행보가 미국 방문 중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교황이 차를 멈추고 불법체류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른바 ‘앵커 베이비’ 소녀의 간절한 소망을 듣고 축복을 내리는 장면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생애 처음 미국을 방문한 교황은 방미 이틀째인 23일(현지 시간) 오전 9시 선대 교황들이 입던 붉은 망토 대신 흰색 수단(카속)에 주케토(교황 모자)를 쓴 채 워싱턴시 교황청 대사관저 앞에서 미국 시민들과 첫 대면을 했다. 수많은 환영 인파에 손을 흔들어 답례한 뒤 백악관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기 전 10여분간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볼과 이마에 입맞춤 하도록 허용하는가 하면 직접 일부 시민들을 안고 가벼운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또 몇몇 젊은이들과는 셀카를 찍기도 했다.
백악관도 교황의 서민적 풍모를 감안해 예정됐던 예포 21발 발사 계획을 취소했다.
교황의 낮은 행보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동 후 백악관 앞에서 시작된 퍼레이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퍼레이드가 시작된 후 멕시코에서 온 불법체류자의 딸 소피 크루즈(5)가 제지선 안으로 들어와 교황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것. 경호원들이 급히 크루즈를 붙잡아 돌려보냈지만, 크루즈의 아버지는 딸을 바리케이드 위로 들어올려 멀리서나마 교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본 교황은 차량을 멈추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고 크루즈는 경호원에게 안겨 교황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교황은 경호원 손에 들린 크루즈의 뺨에 입을 맞추며 축복했다. 다시 바닥에 내려진 크루즈는 손에 쥐고 있던 편지와 노란 티셔츠를 내밀었고 교황은 웃는 얼굴로 받았다. 티셔츠에는 “교황님, DAPA를 살려주세요'(Papa Rescate DAPA)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DAPA(Deferred Action for Parents of Americans)는 ‘불법체류자 자녀가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얻을 경우 그 부모도 추방하지 않는다’는 오바마 정부의 이민개혁 정책이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현재 시행이 중단된 상태다. 또 손글씨로 쓰여진 편지에는 스페인어로 “우리 피부색이 어떻든 나와 내 친구들은 서로 사랑합니다”라고 써 있었고 교황과 여러 인종의 어린이들이 손을 맞잡은 그림도 담겨 있었다.
어렵게 교황의 축복을 받은 크루즈와 그의 동생은 ‘앵커 베이비’인 것으로도 밝혀졌다. 앵커 베이비란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자녀를 출산해 출생 시민권을 규정한 헌법에 따라 시민권을 얻은 아기를 뜻한다. 크루즈의 부모는 10년 전 멕시코에서 건너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권 도전에 나선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원정출산을 비판하며 앵커 베이비란 말을 꺼냈다가 아시아 출신 유권자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교황의 소박한 식탁도 회자되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유엔 주재 교황청 대사관저에 머물고 있는 교황은 생선 요리와 흰 쌀밥 등 의사의 처방에 따라 소박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내 방에 생수와 바나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교황의 뉴욕 방문 기간 중에는 추기경들을 초대하는 리셉션이나 만찬이 열리지 않는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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