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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평등·박애는 빼고 예수 믿으라하니… 누가 믿겠나"

입력
2015.09.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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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은 교리만 말하고 교인들은 설교만 듣고 독서 안 해

사람들을 무신론·인문학에 뺏겨

2년 더 열심히 일하고 98세부터는 다시 사랑하고 싶어

김형석 명예교수는 “인문학 즉 휴머니즘과 기독교 정신은 하나의 강물에 흐르는 두 물줄기인데 세간 풍조에 따라 어느 한 물줄기가 더 강해지기도 한다”며 “최근 인문학 열풍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와 해갈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찬찬한 말씨만큼이나 단정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김형석 명예교수는 “인문학 즉 휴머니즘과 기독교 정신은 하나의 강물에 흐르는 두 물줄기인데 세간 풍조에 따라 어느 한 물줄기가 더 강해지기도 한다”며 “최근 인문학 열풍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와 해갈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찬찬한 말씨만큼이나 단정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실존적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영원을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고독 속에 살아야 한다. 인간이 왜 이러한 영원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결핍만이 넘쳐났던 6.25전쟁 직후, 젊은 철학자가 내놓은 에세이 ‘고독이라는 병’의 한 대목이다. 고독을 진지하게 궁구한 그의 문장은 청춘의 지축을 흔들며 사랑받았고, 그와 피천득 시인에게서 시작된 수필 열풍은 1960~70년대에 유난히 뜨거웠다.

마흔의 문턱에서 고독과 허무를 고뇌했던 저자 김형석(96)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근래 부쩍 다른 사실들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중이다. 100세를 목전에 뒀다는 것. 그런데도 더 왕성한 저작과 강연을 이어간다는 이유다. 이런 까닭에 올 초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에도 초대됐고 출판계 러브콜도 잦아졌다.

절판된 그의 ‘예수’(이와우)가 최근 재출간됐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가 “지성을 가지곤 목사님 설교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동료, 학생들이 ‘예수가 우리와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권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 시작했던 책이다. 새 에세이와 세설 각 1권도 출간을 눈 앞에 두고 있고, 역시 절판된 ‘고독이라는 병’도 재출간을 논의 중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님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는 그를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저서 중 기독교 서적이 꽤 되는데요.

“본업은 철학자지만, 젊은 학생들을 위해 쓴 글 덕에 수필가로 알려졌죠. 철학자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글에 종교문제를 다루지 않은 적도 있는데, 사실 나라는 인간이 시작도 신앙, 마지막도 신앙이에요. 철학, 수필, 신앙을 관통하는 것은 전부 ‘철학적 문제를 신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하는 고민이에요.”

-14세에 신앙을 가지셨죠.

“병치레가 많아서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 갈구가 있었어요. 어떻게 인연이 됐는지 일본 구세군을 통해 들어오는 책, 일본 사상가 우찌무라 간조의 책, 또 일본어로 번역된 서양 철학ㆍ문학에 매달리며 기독교를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빅토르위고,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보면 어떤 목사님, 신부님도 그만큼 기독교에 대해 탐구하지 못해요. 지금도 학생들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장면을 소개해요. 이렇게 깊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봤냐고 묻죠. 오히려 교회 밖의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보기도 해요. 그렇게 고민하는 한 인간이자 철학도로서 신앙을 가졌죠.”

-흔히 교회를 통하잖아요.

“이상하게 지금 우리나라는 그래요. 설교만 듣지 서로 독서하라는 말도 안하고 성경도 안 읽어요. 저는 교회주의를 제일 걱정해요. 권위는 괜찮아도 권위주의는 안되고, 교회는 괜찮아도 교회주의는 안되거든요. 성경을 무조건 문자적으로만 옳다고 하는 것은 지성인들에게 안 통해요. 그래서 직접 입문서를 쓴 거에요.”

-교회주의의 부작용이 있다면.

“많은 목사님들이 큰 예배당 짓고, 교회를 위해서만 기도해요. 세상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했으면 좋겠어요. 스님들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많은데 신부님 목사님 책은 아니에요. 스님들은 인생을 얘기하는데, 목사님들은 교리만 말해요.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을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삼는다는 것이에요. 그 정신은 오로지 자유 평등 박애에요. 이것을 빼고 믿으라면 믿을 사람이 없겠죠.

교회가 이 정신을 잃으니 사람들이 무신론, 휴머니즘, 인문학에 매달리게 되고 교회는 버림받죠. 영국, 덴마크 등에서 교회가 문닫는 것을 많이 봤어요. 셋이 둘 되고 둘이 하나 되고. 600~700명 가득 차던 예배당에 저와 아내 포함 20명만 앉아있는데, 목사님 다섯 분이 나와서 문만 바라봐요. 누구 안 들어오나. 언젠가 우리도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지성인이 늘면 그렇게 될 텐데, 정신의 회복 없이 교회가 항상 클 줄 아는 건 착각이에요. 우리는 나 복 받고 은혜 받는 것만 알지 그런 것은 몰라요.”

김형석 명예교수는 “인문학 즉 휴머니즘과 기독교 정신은 하나의 강물에 흐르는 두 물줄기인데 세간 풍조에 따라 어느 한 물줄기가 더 강해지기도 한다”며 “최근 인문학 열풍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와 해갈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찬찬한 말씨만큼이나 단정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김형석 명예교수는 “인문학 즉 휴머니즘과 기독교 정신은 하나의 강물에 흐르는 두 물줄기인데 세간 풍조에 따라 어느 한 물줄기가 더 강해지기도 한다”며 “최근 인문학 열풍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와 해갈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찬찬한 말씨만큼이나 단정한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철학과 신앙이 내적 갈등을 일으킨 적은 없었나요.

“예전에 ‘운명도 허무도 아니란 이야기’라는 글을 썼어요. 키에르케고르나 모든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인간존재가 하나의 주어진 운명이라고 봐요. 니체도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고 따라가라고 했죠. 또 한편에선 결국 죽음과 역사의 종말이 있으니 인간존재가 회의와 허무라고 보죠. 이 둘 밖에는 인간해석의 길이 없어요. 저는 운명도 허무도 아닌 초월적 섭리를 생각할 때 인간이 비참에서 나올 수 있다고 봐요. 괴테는 전형적 회의주의자인데 ‘예수의 사형이 세계 역사를 제일 크게 바꿨다’고 했죠.”

-목사가 될 생각은 안 하셨나요.

“이건 내 꿈인데요. 나는 평신도 가운데서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준 정신적 지도자가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인들은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아도, 대표 크리스천이 누구냐 물으면 금방 우찌무라 간조 같은 성서학자나, 군국주의에 반대하다 대학에서 쫓겨났던 야나이하라 다다오 전 도쿄대 교수를 꼽아요. 후대에 역사가들이 ‘김 선생이 그런 사람 축에 속했다’고 해주면 좋겠어요.”

-건강관련 질문 많이 받으시죠.

“우리 사회는 감정적으로 너무 빨리 늙는 것 같아요. 친구들을 보면 연구든 감수성이든 늙는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이따금씩 글을 읽다 눈물도 나요. 순수하다고 할까. 안병욱(전 숭실대 철학과 교수ㆍ2013년 별세) 선생이 82세 때 한 커피숍의 아가씨를 좋게 봤는데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다더니 ‘선생님, 주례 좀 서주세요’했대요(웃음). 그 말을 듣곤 커피도 맛이 없고 집에도 가기 싫고 인생이 허무했다는 말에 모두 한참 웃었어요. 사람들이 80세 넘은 노교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순수하다고 위로했어요. 참 좋은 친구였는데.”

-후회되는 점이나 남은 꿈이 있다면.

“철학이든 신앙이든 수필이든, 결국 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 시간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의 봉사가 생의 목적이라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봉사한다고 한 것 같은데 외롭고 고독하다는 생각은 해요. 아내가 한 20년 동안 투병했고 세상 떠난 지 10년이 넘으니까요. 고독은 모든 인간에게 중한 문제거든요. 2년 더 열심히 일하고 98세부턴 다시 사랑 하고 사랑 받아보고 싶달까요. 그럴 여자가 있다면 제게 신청하라고 광고라도 해야죠. 어떻게 저런 말을 하냐고 하겠죠. 난 진심이거든요 (웃음).”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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