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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ㆍ핏자국ㆍ증거인멸이 가리키는 범인은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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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ㆍ핏자국ㆍ증거인멸이 가리키는 범인은 패터슨"

입력
2015.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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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리 무죄" 대법 판단 근거

검찰도 혈흔 분석 추가 증거로

"예단할 순 없어도 유죄 가능성… 기술발달로 부검결과 재해석도"

1997년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압송되고 있다. 인천공항=뉴시스
1997년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압송되고 있다. 인천공항=뉴시스

살인 현장에 있던 두 명의 용의자, 먼저 기소된 한 명은 무죄,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에게 당연히 유죄 선고만 남았다고 볼 수 있을까.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23일 국내 송환되면서 그의 살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법원은 1998, 1999년 각각 상고심과 재상고심에서 패터슨의 친구 에드워드 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사실상 진범은 패터슨이란 취지로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사건 발생 18년 만에 열릴 패터슨의 첫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내달 시작될 예정이다.

패터슨의 살인 혐의에 대해선 신중론 속에 조심스럽게 유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예단할 수 없지만 범행 당시 제3의 인물이 새로 나올 가능성은 없으니 패터슨의 유죄 쪽으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증거 확보가 어려운 만큼 유죄 입증도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사법부의 다른 판사는 “대법원의 기존 판단과 함께 18년 전 부검 결과가 현재 발달한 과학기술분석력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는지가 유죄 판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사법부로선 부담스런 부분이다.

2011년 재수사를 통해 추가 증거를 상당수 확보한 검찰은 유죄를 확신하는 모습이다. 가장 유력한 증거는 2008년 도입된 혈흔분석기법 등을 통해 당시 범행 현장을 재연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서 있던 소변기 정면 벽에 주사기로 뿌린 듯한 일자형의 핏자국이 있었다. 이는 조씨가 오른쪽 목을 세 차례 찔린 뒤 몸을 틀면서 동맥이 끊겨 분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조씨가 몸을 돌린 방향과 관련, 리의 진술과 재연 상황이 서로 일치해 범인은 패터슨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리의 경우 대체로 상체 일부에만 피가 묻은 데 반해, 패터슨은 상ㆍ하의와 양손에 많은 피가 묻은 점도 검찰이 패터슨을 진범으로 판단하는 근거다. 조씨의 동맥이 절단돼 다량의 피가 분출된 점과 범행 수법상 근접해 살해했을 수밖에 없어 패터슨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은 적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또 피해자 조씨가 배낭을 메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 두 용의자 중 체구가 더 작은 패터슨이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흉기를 찌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애초 검찰은 서로 상대가 범인이라고 지목한 두 용의자 중 키 172㎝, 몸무게 63㎏인 패터슨보다 키 180㎝, 몸무게 105㎏인 리를 범인으로 보고 기소했다. 조씨의 저항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되지 않아 거구인 리가 그를 제압하기 쉬웠을 것이란 추정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체구를 위주로 범인을 판단한 검찰의 공소내용을 다른 증거들을 들어 조목조목 깼다.

사실 패터슨의 가장 유력한 유죄 정황은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히고 있다. 판결문을 보면 리는 목격자일 뿐이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패터슨이 진범으로 비친다. 리는 “패터슨이 살인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하면서도 범행 당시 패터슨이 흉기로 찌른 횟수와 부위를 자세히 진술하지 못했다. 반면, 패터슨은 “리가 죽였다”고 진술하며 리가 흉기를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마약을 하는 것으로 알고 리를 따라갔다는 패터슨이 예상 밖의 범행을 갑자기 보고도 너무 세세하게 진술한 것을 대법원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범행을 했기 때문에 상세하게 진술했을 것으로 의심했다.

대법원은 특히 화장실 세면대에 묻은 많은 양의 피에 주목했다. 패터슨은 “세면기 우측 모서리와 그 옆 벽에 기대 서서 리의 범행을 목격했고, 흉기에 찔린 조씨가 자신을 붙잡으려 해 밀쳤다”고 진술한 데 대해 대법원은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조씨가 패터슨이 가리고 있는 세면기 우측 모서리에 다가가 많은 핏자국을 남길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런 정황에 비춰 대법원은 현장 목격자가 없어 둘의 진술을 신빙성을 따져야만 하는 이 사건에서 패터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리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범행 이후 패터슨의 행동 역시 그가 진범이라는 데 무게를 두게 했다. 리는 사건 뒤 집으로 가서 피 묻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잠을 잤으나, 패터슨은 피 묻은 옷을 태우고, 소지했던 흉기를 도랑에 버리는 등 적극적으로 증거를 없애려 했다. 그러면서 사건 직후 범행을 적극 부인한 리와 달리 패터슨은 범행을 자책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검찰은 대법원이 패터슨을 범인으로 추정한 이런 근거들을 모두 수용해, 패터슨을 기소하고 이제 다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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