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5시 50분쯤 영동군수실에 주민 이모(영동읍 거주)씨가 “군수를 만나겠다”고 불쑥 찾아왔다. 퇴근시간이 다 됐지만 박세복 군수는 10여분 동안 이씨로부터 불만 사항을 빠짐없이 경청했다. 그리곤 해당 부서에 연락해 이씨의 민원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주문했다. 이씨는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민원이지만 군수에게 하소연하고 나니 막힌 가슴이 뚫린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충북 영동군이 운영하는 ‘낮은 군수실’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낮은 군수실은 지역민의 다양한 소리를 듣자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박 군수가 취임과 함께 시작했다. 군민이면 누구나 언제라도 군수를 만나 군정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전하고 고충거리도 털어놓게 하자는 취지였다.
군수 집무실 문턱을 낮춘 이후 군수를 찾는 주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789명이 군수실을 다녀갔다. 군수를 찾은 주민들은 다양한 의견과 민원을 쏟아내고 있다. 박 군수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건의나 불편 사항을 주의 깊게 듣고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시급한 민원은 신속히 처리한 뒤 담당 공무원을 통해 만족여부를 챙기고, 해결 불가능한 민원은 박 군수가 직접 해당 주민을 설득하고 있다.
낮은 군수실을 통해 지역 현안이 해결되기도 했다.
용화면 주민들은 군수를 직접 만나 지역 숙원인 먹는 물 문제를 해결했다. 산골오지인 용화면은 가장 가까운 정수장(학산면)에서 30km나 떨어져 있어 상수도 공급이 사실상 어려운 곳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하수나 계곡물에 의존하는데, 가뭄으로 수원이 마르는 날이면 주민들은 먹는 물도 구하지 못해 큰 불편을 겪는다. 이런 고충을 주민으로부터 직접 들은 박 군수는 상수도 시설 용량이 풍부한 전북 무주군 쪽에 도움을 청했다. 박 군수의 끈질긴 설득 끝에 지난 4월 무주군과 상수도 공급 협약을 맺었고, 주민들은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받게 됐다.
박 군수는 주민과 주민, 기업과 주민 사이의 갈등 해소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 종중과 인근 기업이 수목장 조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박 군수가 ‘해당 토지를 기업이 매입하고 종중은 다른 곳에서 부지를 찾는’대안을 제시해 문제를 말끔히 풀었다.
영동군은 주민들의 생생한 소리를 듣는 시책을 확대하고 있다. 군청 홈페이지 민원상담 창구 이용이 서툰 노인들을 위해 지난 7월 본청과 읍면사무소에 ‘군민 소리함’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박 군수는 “개방과 소통은 행정의 투명화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하다”며 “군수실 문턱을 더 낮추겠다”고 말했다.
한덕동기자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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