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동물보호소에서 수의사로 일할 때 일이다. 애니멀 호더(동물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집착하며 동물을 하나하나 챙겨주는 것이 아닌 오직 수집하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로부터 구조한 저먼 셰퍼드 혼혈인 제이크는 돌을 씹는 버릇이 있었다. 제이크의 이빨은 모두 상해 있었고 자칫 돌을 씹는 데 그치지 않고 먹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이크와 함께 구조된 프렌치 불독인 엠마는 입양을 희망했던 사람의 집에 놀러 갔다가 구석에 있던 양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입양 희망자는 자신의 양말 한쪽이 없어진 것을 몰랐고 엠마는 통증을 호소하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엠마는 동물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기에는 늦어버렸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반복적으로 먹는 행동을 이식증(Pica Syndrome) 이라고 한다. 이는 반려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 먹지 말아야 하는 것에는 소화가 안 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해당된다. 이식증의 원인으로는 뇌의 병변으로 인한 행동 변화, 철분이나 아연과 같은 필수 미네랄 부족, 강박 행동 등이 있다. 강박 행동으로 확진을 하기 위해서는 신경계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사료에 필요한 미네랄과 영양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지 수의사에게 확인을 해야 한다.
고양이의 경우 의류나 이불 등 섬유를 계속 빨고 심지어 먹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비닐봉투라던가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먹기도 한다. 고양이 중에는 샴과 버마 고양이 품종에서 이식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식증은 단순히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인 요소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식증이 나타나는 시기는 사춘기와 성장을 마친 직후가 대부분이지만 특정 나이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식증은 스트레스에 의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지만 보호자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 예컨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입에 넣는 순간 보호자는 반려동물의 이름을 부르며 입을 만지고 말을 건네게 된다. 보호자는 “다음부터 이런 거 먹으면 안돼.” 라며 돌아선다. 반려동물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입에다가 넣는 행동이 보호자의 관심을 얻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경우라면 기본적인 훈련 중 하나인 “안돼!” 나 “뱉어!” 훈련을 사전에 실시,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입에 넣는 순간에 이름 대신 간략하게 “안돼!” 나 “뱉어!”라는 지시어만 말해야 한다. 이외에 반려견을 쓰다듬거나 이름을 부르거나 안아 올려선 안된다.
고양이의 경우 너무 지루한 환경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무료한 환경이면 오래 씹을 수 있는 간식을 제공해주거나 간식을 숨겨서 찾아내게 하는 등 시간을 들여 뭔가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양이 장난감을 이용해 함께 놀아주는 것도 일부 효과가 있다. 단, 고양이가 지루함을 느낄 때까지 놀아주는 것보다는 시간을 정해놓고 놀아주는 게 좋다. 고양이의 체력이나 성격에 따라 시간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은 15~30분 내외로 놀아주면 된다.
만약 이식증이 중증의 상태라면 약물치료도 병행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식증이 발견되면 즉시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
이혜원 수의학박사, 유럽수의임상행동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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