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이브 몽탕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이 흘러나왔다. 싸늘해진 저녁 공기와 어울려 꽤 근사하다. 지난 여름 들렀던 파리를 떠올려본다. 집들이 예뻤고, 사람들의 태도도 세련됐지만, 외국도시 같지 않았다. 그저 사람 사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 한없이 멋스럽게만 마음속에 치장했던 그곳과는 달랐다. 실제로 돌아다니다 보니 마주치는 모든 이가 장삼이사, 갑남을녀였다. 신비가 깨져 실망했냐 물으면 외려 그게 좋았다고 대답하고 싶다. 문화적 차이나 삶의 질 따위 따져 보진 않았다. 거지도 있었고 노동자도 있었고 멋진 젊은이도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걷고 있자니 멀리서 날 보고 검지와 중지를 세워 담배 한 대 달라던 홈리스 할머니가 생각난다. 멋진 연두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두 개비를 내밀었더니 하나만 달라고 했다. 문득, 시골에서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골초였던 큰고모가 떠올랐다. 파리 한복판과 경상도 산골 어디쯤의 거리가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잊혀가다 몇 달 만에 다시 오래된 노래 한 곡으로 상기되는 파리. 그 정경을 자못 스산해진 마음 위에 살짝 얹어본다. 그러곤 보들레르의 산문시를 읽는다. 분명 가본 곳이었으나 모든 게 꿈이었거나 영화 속 장면 같다. 파리든 홍대든, 사람들로 득실대나 여전히 마음엔 욕망의 화로가 괄호처럼 텅 비어있는 21세기의 한 가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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