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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신은 교회가 가난하길 바란다"…쿠바 광장서 미사

입력
2015.09.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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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성직자들 상대로 한 기도회서 '가난의 정신' 받아들일 것 주문

대규모 미사에는 카스트로, 아르헨 대통령 등 참석…"봉사의 삶" 역설

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19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로 향하는 전용기 내에서 선채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19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로 향하는 전용기 내에서 선채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일(현지시간) "신은 교회가 가난해지기를 바란다"며 성직자들이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빈자와 약자를 돕는 데 더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열흘간의 역사적인 쿠바·미국 방문 이틀째를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저녁 쿠바 아바나 성당에서 수백 명의 사제, 수녀, 신학생을 상대로 한 기도회에서 "교회가 가난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CNN방송과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부(富)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고, 우리의 가장 훌륭한 것을 빼앗아버린다"며 "교회로서는 나쁜 회계사가 좋다. 왜냐면 그들이 교회를 자유롭고 가난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직자들이 가장 작고, 가장 버림받고, 가장 아픈 사람들에게 예산과 관리를 집중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미리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둔채 즉흥 연설을 통해 "제발 용서에 싫증내지 말고, 자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촉구했다.

평소 소신대로 '돈의 우상화', '한 번 쓰고 버리는 문화' 등의 자본주의 실태를 비판한 교황은 쿠바의 청년들을 향해 "스스로를 열고 꿈을 꾸라"면서 "당신이 최선을 다하면 이 세상을 다른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쿠바·미국 순방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19일(현지시간) 첫 방문지인 쿠바의 아바나에서 교황청대사 관저에 마련된 숙소까지 차퍼레이드를 벌이며 연도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쿠바·미국 순방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19일(현지시간) 첫 방문지인 쿠바의 아바나에서 교황청대사 관저에 마련된 숙소까지 차퍼레이드를 벌이며 연도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연설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미리 배포한 원고를 통해 이혼, 동성애, 혼전동거 등의 민감한 이슈를 둘러싼 교회 내 분열 조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프란시스코 교황은 원고에서 파벌에 따른 분열을 비난하면서 성직자들에게 "이견과 논쟁할 것이 있으면 앞에서 직설적으로 말해야지 뒤에서 험담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선 "교회에서 갈등과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 교회가 살아있다는 신호"라며 "다투지 않는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잃어버린 늙은 부부와 같다"고 비유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수도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봉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포함한 수 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사에서 교황은 "봉사는 절대 이념적이지 않다"며 타인을 돕는 삶에 대해 역설했다.

교황은 쿠바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직접 언급은 삼가면서도 이념과 이기주의적인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은 신의 뜻에 따라 항상 개인의 바람과 욕망, 권력 추구 의지 등을 한쪽으로 치워두는 대신 가장 취약한 이웃을 돌봐야 한다"면서 "이기주의와 같은 것에 유혹을 당하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념이 아닌 사람을 돕는 것이므로 봉사와 헌신은 절대 이념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19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공항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해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19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공항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해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교황으로는 세 번째로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과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얼굴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있는 이 광장에서 스페인어로 미사를 집전해 쿠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교황은 또 쿠바인들에게 "특정한 한 부문만을 보고, 또는 이웃이 무엇을 하는지만을 보고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삼가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급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사회주의 정부의 극심한 통제 하에 쿠바 국민의 불만이 팽배한 현 상황을 에둘러 표현하고 나서 이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과 쿠바의 외교 관계 정상화 과정 막후에서 적지 않은 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에 이어 미국을 방문하면 미국의 쿠바 경제 봉쇄 해제 해결사로도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덕분이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에 직접 참가하려고 밤을 새운 이들이 많았다고 외신들은 소개했다.

AP통신은 1998년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집전 미사 때보다 이날 참석 인원은 적었지만, 대다수가 진정으로 미사 참석을 바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신자들 수 십만 명이 모여 있다. 뒤편 외교부 청사 외벽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형상화돼 있다. 연합뉴스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신자들 수 십만 명이 모여 있다. 뒤편 외교부 청사 외벽에 체 게바라의 얼굴이 형상화돼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열악한 쿠바의 정치 상황을 항의하려던 쿠바 반체제인사 30∼40명이 미사 직전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저명 반체제 인사인 미리암 레이바와 마르타 베아트리스 로케는 이틀 연속 정부 요원들에 의해 구금돼 교황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편, 22일 미국에 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지지도는 70%로 나타났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0일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의 공동 여론 조사 결과, 미국민의 교황 지지도는 70%로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55%) 지지도보다 높았다.

이는 낙태, 기후, 빈부 문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 덕분으로 풀이된다.

미국민의 64%와 미국 가톨릭 신자의 89%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을 이끄는 방향에 대해 지지한다고 답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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