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 말이 있다. 이 격언은 그런데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농구를 할 줄 안다는 '타짜'들이 모였지만 추일승(53) 감독의 리더십 아래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12명의 선수들이 각자 역할을 하며 개막 5연승을 달렸다.
시즌 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고, 상쾌한 시즌 출발을 했다고 해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오리온은 현재 선수 구성으로 2개 팀을 꾸릴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선수라면 누구나 많이 뛰고 싶어하는데 감독은 성적이 좋으면 자주 쓰던 선수를 내보내고 싶을 수밖에 없다.
추일승 감독은 "팀이 연승을 탈 때 잘했던 선수들을 내보내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서 "나름대로 안배를 하려고 하는데 못 뛰는 선수들도 생긴다"고 말했다. 팀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감독으로서 물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특히 고참들에게 더욱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추 감독은 "주장 김도수나 임재현, 김동욱 등 고참들한테 참 고맙다"며 "코트 안이나 밖에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준다"고 밝혔다.
추 감독이 선수들의 출전 시간 분배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은 지난 19일 전주 KCC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나타났다. 개막 3경기에서 쟁쟁한 선배들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포워드 김민섭을 시즌 처음 엔트리에 넣었다. 전주 송천초-전주남중-전주고-성균관대를 졸업한 김민섭이 고향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도 있었다. 김민섭은 이날 처음으로 코트를 밟아 3분을 뛰며 2점을 올렸다.
또 프로-아마 최강전을 통해 대세로 떠오른 정재홍과 지난 시즌 어시스트왕 이현민을 전략적이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베스트 5로 정재홍을 초반에 내보내고 후반에는 이현민을 투입한다. 둘의 출전 시간 배분은 5대5 비율이다. 추 감독은 "재홍이는 압박 능력이 좋아 초반에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시야가 넓은 현민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애런 헤인즈에게 밀려 상대적으로 출전 시간이 적은 조 잭슨에게는 차분함과 기다림을 주문했다. 잭슨은 올해 23세로 어리고 해외 리그 경험이 처음이다. 열정이 넘칠 시기인 만큼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만 팀에 빅맨이 없어 180㎝의 잭슨 대신 리그 경험이 풍부한 헤인즈(199㎝)를 중용할 수밖에 없다.
잭슨이 제한된 시간 속에서 무리한 플레이를 하면 추 감독은 냉정하게 벤치로 불러들인다. 그는 잭슨에게 "시즌은 길다. (대표팀에 차출된 빅맨) 이승현이 돌아오면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4라운드부터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에 뛸 수 있게 되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라"고 강조했다.
추일승 감독은 또한 올 시즌을 승부처로 보고 지난 2년간 두꺼운 선수층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이런 결실이 이번 시즌 비로소 나타나고 있다. 농구 이론에 밝은 추 감독의 수비 전술은 선수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충분한 학습 효과가 이뤄졌다.
정한신 STN 해설위원은 "오리온의 수비 변화가 상당하다. 지역 방어와 맨투맨 수비 변화가 많고 맨투맨 수비를 하더라도 그냥 선수들이 1대1로 막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공간을 막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는 짧은 시간 안에 결코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리온은 이번 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27일 서울 삼성을 만나 6연승에 도전한다.
사진=오리온 추일승(왼쪽) 감독과 허일영.
김지섭 기자 onio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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