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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우리집 ‘이브’는 왜 웃긴 막장에 빠졌나

입력
2015.09.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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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드라마 중 제일 잘 나가는 게 ‘이브의 사랑(MBC)’이라고 한다. 아침드라마가 대개 구성이 헐겁고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드라마의 줄거리와 일부 장면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소위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클리셰가 총출동하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 유전자 검사, 악역을 한방에 보낼 수 있는 비밀이 담겨있는 USB,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 중엔 꼭 웃긴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들은 서로 눈이 맞아 알콩달콩 좋아하고, 주인공이 악역에게 내민 회심의 한방은 늘 악녀가 보기 좋게 뒤집고,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가 엿듣게 되는 설정이 그렇다. 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이 차다.

일단 드라마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악녀 끝판왕’을 컨셉으로 탄생했지만, 매번 허당 짓을 하는 강세나(김민경). 그리고 강세나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지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진송아(윤세아)의 대결구도다. 말이 대결 구도지, 진송아는 지난 18일 방영된 90회까지도 늘 강세나에게 당하기만 한다.

둘은 친구면서 동서지간이다. 당연히 재벌가 며느리. 구인수 회장(이정길)의 큰 아들 구강모(이재황)가 진송아의 남편이고, 작은 아들 구강민(이동하)은 사랑 없이 강세나와 결혼했다(드라마를 위해서?). 구강민의 첫사랑은 강세나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진현아(진서연)다. 아, 물론 이 사람은 강세나의 음모 때문에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은 채로 주인공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쇼킹하고 기괴한지는 아래 장면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 스파게티 따귀

‘모두 다 김치(2014년, MBC)’에서 그 유명한 ‘김치따귀 씬’(전 사위를 찾아간 장모가 김치로 따귀를 때림)이 나온 지 1년쯤 됐나. ‘이브의 사랑’에선 ‘스파게티 따귀’가 나왔다.

새댁 강세나의 시어머니 모화경(금보라)이 친구들을 초청해서 며느리 음식솜씨 자랑을 하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음식이 모두 배달 음식이었다. 이 와중에 뻔뻔하게 대응하는 강세나의 모습에 화가 난 시어머니가 스파게티를 며느리 얼굴에 집어던진다. ‘김치따귀’의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아니면 그냥 화제성을 노린 막장인지. 마지막회 즈음에는 또 다른 음식으로 따귀를 때릴 지도 모른다. 이번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 아침 드라마의 ‘러브 액추얼리’(?)

74회에서 강세나가 구회장 가족과 회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게 되자, 구 회장은 강세나에게 이혼과 퇴사를 명령한다. 이에 강세나는 시아버지 구 회장의 회사 앞 시위대 속에 사람을 심어서 괴한 연기를 하게 한다. 그리고 괴한이 구 회장을 공격하려는 순간 자신이 몸을 던져 뛰어든다. 강세나는 이 사고로 자신이 실어증에 걸리고 하반신이 마비됐다고 연기를 한다.

결국 구 회장은 강세나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실어증을 연기하는 강세나가 나오면 갑자기 드라마가 웃겨진다. 강세나는 말 대신 스케치북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써서 보여주는데, 이건 마치 ‘러브 액추얼리’의 사랑 고백 장면 같다. 이후 또 한 번 집에서 쫓겨날 처지가 된 강세나는 구호를 적은 머리띠를 메고 일인시위도 한다. 이렇게 큰 웃음을 주던 강세나는 79회, 단 5회 만에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난다.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와서 첫사랑 현아만 찾자 “미친 거 아냐”라고 소리치며 기립한다. 그런데 상황은 빠르게 수습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속도감으로 치면 미드 부럽지 않다.

'이브의 사랑' 한 장면.
'이브의 사랑' 한 장면.

● 악녀+막장+개그 코드까지

막장 캐릭터 강세나는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악녀다.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리면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거나, 오랑우탄처럼 가슴을 두 손으로 마구 때린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는 진송아에게 달려들어 허벅지를 물어뜯는 장면도 등장했다. 이른바 ‘개세나’란다.

대놓고 과거 악녀 캐릭터를 베끼기 민망해서 차별화 포인트를 이런 ‘짐승 허당’에 둔 건가. 아니면 정말 작가의 개그 욕심인 걸까.

놀랍게도 ‘이브의 사랑’은 TNMS 기준 평균 시청률 15.8%를 기록 중이다. 동시간대 아침 드라마 1위다.

주시청층은 당연히 ‘아줌마’일 것이다. 대체 왜 우리 엄마들은, 아내들은 이런 드라마를 보는 것일 것. 이 드라마의 방영 시간은 아침 7시50분이다. 보통 전업주부들이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학교 보낸 직후다. 주부들에게는 전쟁 같은 ‘아침 근무’가 끝난 직후인 것이다.

직장인들이 고된 근무를 마치고 술 한 잔 하러 가거나, 기자들이 마감을 끝내고 이른바 ‘석양주’를 먹는 것과 비슷하달까. 어떤 사람은 ‘그까짓 아침 준비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부들이 토요일-일요일 주말 내내 가족들 밥 해주고 뒤치닥꺼리하고, 그리고 왠지 더 바쁜 월요일 아침에 아이 등교, 남편 출근까지 한바탕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떨까. 아마도 근무가 끝난 직후의 긴장 풀림, 허탈함, 피곤함, 해방감이 동시에 몰려오지 않을까. 그럴 때 보는 TV프로그램이 ‘하우스오브카드’나 ‘명견만리’는 아닐 테다. 황당하지만 쪼는 맛이 있고, 헛웃음도 나오는 자극적인 드라마가 주부들에겐 샐러리맨의 소주 한 잔일지 모른다. 소주는 뭐 몸에 좋아서 먹나. 스트레스 풀 때는 ‘나쁜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너무 막장, 막장 하지 말자. 어쩌면 우리 엄마들에게 그 만한 웃음과 위로를 주는 게 가족이 아니라 ‘이브의 사랑’이라는 다소 서글픈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당신의 엄마가, 혹은 아내가 ‘이브의 사랑’을 너무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면, “이번 주말엔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라고 살갑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

아차, 이번 주말은 추석 연휴구나. 다음주 ‘이브의 사랑’에는 필히 더 ‘센’ 스토리가 나와야겠다.

MBC '이브의 사랑' 공식포스터
MBC '이브의 사랑' 공식포스터

<이브의 사랑>

MBC 매주 월~금 오전 7시50분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한 여자가 역경을 이겨내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고난 운명 극복기를 그린 드라마

★시시콜콜 팩트박스

1. 강세나 역의 김민경은 2001년 미스코리아 진에 입상한 배우다. 데뷔 직후 김민경이란 본명에서 김지유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다가 최근에 다시 본명인 김민경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이브의 사랑’ 이계준 PD는 지난 9월 10일 중도하차했다. 제작진은 이 PD가 내부적인 문제로 하차했고 대신 이형선 PD가 투입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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