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부처의 수장(首長)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시 정치인이었나 봅니다. 본인이 스스로를 부처의 장관이 아닌 ‘정치인’이라고 부른 건데요.
지난 18일 최 부총리는 거제도에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 주관의 기획재정부 출입 기자단 세미나와 간담회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는 지난 14~15일 열렸던 국회 국정 감사 얘기로 자연히 이어졌습니다. 워낙 이번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가 셌던 터라, 최 부총리의 소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데요.
최 부총리가 이 자리에서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하다”면서 “다 지나가는 바람이고, 정치인은 얻어맞으면서 큰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라고 했습니다. 의원들의 질타도 국감 활동 중 하나이고, 피감기관의 장으로서 당연한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자 한 의도였을 텐데. 그만 부총리와 기재부 장관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감수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것도 부총리 겸 장관으로서 주재한 자리에서 말입니다.
최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A+→AA-)한 스탠다드앤푸어스(S&P)을 상대로 벌였던 지난한 설득 과정도 얘기했습니다. 최 부총리가 모리츠 크래머 S&P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을 직접 만나 등급 상향을 설득을 요청했다는 건데요.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말입니다. 그 만큼 경제부처 수장으로서 노력을 했다는 얘기일 텐데요. 당연히 박수를 보내야 할 텐데, 본인을 정치인이라고 한 말 때문인지 여의도에서 다져진 정치력을 십분 발휘했다는 자찬으로 들렸습니다.
요즘 최 부총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느 시점에 ‘정치인 최경환’으로서 ‘여의도’로 돌아가느냐 때문인데요. 기재부 내부에서도 ‘당연히 갈 것이다’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아직까지는 ‘나는 정치인이다’라는 말은 아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수 부진, 청년 실업 등 아직 풀어야 할 현안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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