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도입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1년만에 통신 지형을 뒤바꿨다.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단통법으로 인해 소비자만 부담을 떠안은 형국이다.
■ 가계통신비 증가 추세, 요금할인으로 몰려
공정 경쟁을 통한 시장 질서 유지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도입된 단통법은 실제로 소비자들의 부담을 낮췄을까.
정부는 지난해 10월 단통법을 시행하면서 불법 보조금 근절 차원에서 공시지원금을 최대 33만원까지 올리고 유통망 추가 지원금도 15%까지 확대했다. 공동 기준안을 마련해 불법 보조금 경쟁을 줄이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통계청과 미래부의 자료에 따르면, 단통법 이후 소폭 감소했던 가계통신비는 최근 증가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올 2분기 가구당 가계통신비는 14만7,700원으로 전분기(14만6,000원)보다 2.4%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약 3.0%가량 늘어난 수치다.
공시지원금을 최대한 제공받으려면 최고가 요금제인 월 10만원대의 요금에 가입해야 한다. 단통법 이후 소비자의 부담만 증가됐다는 분석이 타당성을 갖는 이유다.
단통법이 시행되고 요금 할인폭이 줄어들자 소비자들은 약정할인 대신 '요금할인 20%' 정책에 급격한 관심을 보이게 됐다.
요금할인 제도는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도입된 제도로, 단말기 구입 후 통신 서비스에 가입하게 되면 지원금 대신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현재 단통법은 지원금을 받지 않는 이동통신 가입자에게는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16일까지 이 제도에 가입한 사람이 200만9,000여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달 월별 가입자는 40만9,489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갈수록 가입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당초 제도 도입 때는 할인 폭이 12%에 그쳐 가입자가 많지 않았지만 4월 할인율이 20%로 상향조정되면서 가입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9월에는 16일까지 23만3,627명이 가입한 것으로 확인돼 월말까지 4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통신사, 적자 구실로 수익 다각화
도입 당시 단통법을 반대하던 이동통신사들은 법 시행 이후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다. 표면적인 가입자 유치 경쟁이 사라지고 마케팅 비용이 줄면서 지난해보다 양호한 실적을 거둬들였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 SK텔레콤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2.6% 상승한 4,129억원을 기록했다. KT도 같은 기간 17.6% 증가한 3,688억원을 기록했고 LG유플러스는 24.3% 늘어난 1,92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 5월 이후 경쟁적으로 출시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통해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도 지켜냈다. 실제로 LTE 가입자 1인당 월 데이터 이용량은 지난해 12월 3.3GB에서 올해 7월 3.9GB로 오히려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의 부담만 늘렸다는 평가다.
이와 별개로 이동통신사들은 일제히 수익성 악화를 내세우며 불법적인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SK텔레콤은 자회사 SK네트웍스의 외국인 불법 선불폰 개통이 확인돼 35억6,000만원의 과태료를 지급했다. 이를 포함해 올해만 5건의 제재와 287억원의 과징금, 7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KT와 LG유플러스도 외국인 명의 도용 선불폰과 관련해 각각 5,000만원과 900만원, 결합상품 관련 허위·과장광고로 3억5,000만원씩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특히 LG유플러스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통신 다단계로 인한 단통법 위반으로 23억7,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 팬택의 몰락…삼성·LG도 쓴 웃음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통신사에 비해 큰 폭의 실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단말기 가격 거품 현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이다. 수치로 드러난 판매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단말기 유통점과의 결착을 더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유통점에 지급하는 리베이트로 약 8,0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연간 규모로 환산하면 1조원이 넘는 규모로, 자사의 프리미엄폰 판매량이 급감하자 유통점 리베이트를 늘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해 출시된 출고가 70만원 이상의 국내 프리미엄폰 판매량은 640만대로, 단통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750만대)보다 15%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사들이 앞다퉈 가격을 인하했지만, 하락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고가를 낮춘다 하더라도 이미 단통법 이전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는 없었다.
특히 LG전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심각한 부진의 늪에 빠진 상황이다. LG전자는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0% 중반대를 기록하며 2위를 유지해왔으나 단통법 이후 아이폰에 밀리며 13.8%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특히 LG전자는 지난 2분기 무선사업부의 영업이익이 2억원으로 떨어진 이후, 태도를 바꿔 보조금 상한선 폐지를 골자로 하는 단통법 개정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중소 제조사이자 국내 3인자를 자처했던 팬택은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되며, 옵티스 컨소시엄에 인수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 단통법 개정 분위기 솔솔…폐지론도 확산
시행 1년을 앞둔 상황에서 단통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주된 내용은 지원금 상한제 폐지와 분리공시제 도입이다.
지원금 액수 제한으로 당초 단통법 입법 취지와 달리 사업자 간 자유로운 경쟁이 제한돼 현행 '5:3:2'의 이동통신 시장 과점 체제가 굳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불어 지원금 상한제로 이용자에게 돌아갈 보조금 혜택이 줄어들어 통신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분리공시제는 전체 보조금 중 이동통신 사업자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장려금을 각각 구분해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분리공시제가 도입될 경우 단말기 공시지원금이 어떻게 구성되고 누가 얼마나 지급하는지가 공개되는 만큼 단말기 가격 인하 압박이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다.
정치권에서는 법 개정을 넘어 단통법 폐지를 요구하는 주장도 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올 3월 단말기 판매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냈다.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동통신 사업자가 전기통신설비 구축에 드는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만든 기본료가 책정됐으나, 망구축이 완료됐으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역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으로 지원금 상한제 등이 도입되면서 이용자의 단말기 구매부담이 증가했다"며 "통신요금 인하로도 이어지지 않는 단통법은 대폭 보완되거나 폐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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