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예술흔적골목의 벽화. 마산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도 걸렸다. 야간에 조명이 들어오면 골목은 더욱 그윽한 분위기를 낸다.
가을에는 볕 좋은 오후를 기다려, 예쁜 벽화가 그려진 오래된 골목길을 느릿하게 걸어본다. 마음 참 편안해 진다.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에 예술의 향기 짙은 오래된 골목이 있다. 창동예술촌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얼마 전 예술촌 중심을 가로지르는 큰 길에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이름을 새긴 '상상길'도 만들었다.
▲ 골목에 걸린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자화상. 마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프랑스 유학 후 다시 마산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 추산동에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 있다.
● 변함없는 예술인의 아지트…창동예술촌
창동 '불종' 거리 일대가 예술촌이다. 불이 나면 이를 알리기 위해 치던 종이 불종이다. 원래의 것은 없어지고 지금은 상징물만 남았다. 부림시장으로 이어진 창동거리길(동서북 10길) 중간쯤, 양쪽의 좁은 골목길로 접어든다. 골목골목마다 50여명의 예술인들이 작업을 하고, 작품을 판매하고, 방문객들과 어울려 체험을 한다. 예술촌은 세 구역으로 이뤄진다. '마산예술흔적 골목'은 옛 마산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골목, '에꼴드 창동 골목'에는 예술인들의 아트숍과 작업실이 밀집해 있다. '문신예술골목'은 세계적 조각가 문신 선생의 예술세계를 모티브로 꾸며졌다. 그는 마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한 후 1980년 마산으로 돌아와 훗날 생을 마감했다.
▲ 창동예술촌아트센터에서 만난 김은진(왼쪽) 작가. 보리를 테마로 한 독창적인 조형 작품을 선보이는 덕에 '보리작가'로 유명하다. 우연히 작가와 마주쳐, 사는 얘기 나눈 것도 예술촌에서 누릴 수 있는 재미다.
골목들 기웃거리며 게으름 부린다. 문신 선생의 조각과 그림들을 찾아보고, 공방에 들러 체험도 한다. 유리공예, 냅킨공예, 검정 고무신에 그림 그리기 등 호기심 끄는 것들이 참 많다. MBC경남 창동스튜디오를 찾아가 생방송도 구경한다. 매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는데 옛 DJ가 있던 다방 분위기에 신청곡도 받는다. 도시재생어울림센터 앞의 느린우체통은 정겹다. 편지 부치면, '달이' 우체통은 한달 뒤에, '연이' 우체통은 1년 뒤에 발송된다.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창동분식'은 간장겨자소스에 찍어먹는 김밥이 별미인 50년 전통의 분식집, 큰 길에 있는 '고려당'은 1950년대에 문을 연 '꿀빵'으로 유명한 빵집이다. 유럽 거리에서 볼 법한 레스토랑도 있고 서울 홍대 앞에나 있을법한 예쁜 카페도 있다.
창동거리는 예부터 번성했다. 조선시대(1760년)에는 세공미를 보관하던 조창이 있었다. 동네 이름도 그래서 창동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난민이 몰려 커진 마산의 중심지가 됐다. 이 때 예술인들 역시 창동으로 몰려들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떠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창동거리는 화방이 많았고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는 것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 3.15 마산의거를 기리기 위한 315개의 화분이 문신예술골목에 걸려 있다.
창동거리는 1980~90년대 중후반까지 번성했다. 1km 남짓한 거리에 극장이 7개, 백화점이 3개나 있었단다. 이후 신시가지 개발로 쇠퇴했다가 2012년 예술촌 조성으로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이 정겨운 골목에서 예술인들이 열정을 쏟아내고,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예술이 덧입혀진 골목은 가을에 더 정겹다.
예술촌 내 창동아트센터가 있는 아고라 광장에 가면 예술촌 관련 지도와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관련정보는 홈페이지(www.changdongart.com)에서 얻을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가 창동거리에 조성한 상상길. 10월 31일까지 세계 각국 2만3,000여명의 이름이 이 거리에 새겨진다.
● 세상에 단 하나뿐인…'상상길'
한국관광공사가 이 멋진 창동거리에 기발한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 '상상길'이다. 유명스타와 함께 외국인들의 이름을 새긴 블록으로 만든 길이다. 공사는 '당신의 이름을 한국에 새겨보세요'라는 주제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30일까지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캠페인 시작 한 달 만에 30만명 이상이 신청했고 이 가운데 선착순 2만3,000여명의 이름을 블록에 일일이 새겼다. 이를 길에 깔았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예술이라는 테마가 상상길의 취지에 부합하며 창원이라는 도시가 국내외 관광지로 생소해 그 자체로도 상상을 일으키는 장소이기 때문에 상상길을 창원에 조성했다"고 말했다.
우병희 한국관광공사 브랜드마케팅팀 팀장은 "유명 스타가 아닌, 일반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거리는 창동예술촌의 상상길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상길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MBC경남창동스튜디오. 매일 오후 진짜로 생방송이 진행된다. 신청곡도 받는다.
이름들 하나씩 짚으며 걷는다. 참 많은 상상이 따른다. 낡은 식당과 술집의 남루한 벽과 허름한 테이블, 우리는 글귀와 이름으로 흔적을 남기며 잊지 못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했다. 가끔 이런 추억이 벅찬 하루에 위안이 된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거리가 먼 나라 어디엔가 있다는 것은 큰 흥미거리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든, 그렇지 않든, 이 거리를 상상하며 한국을 찾을 것을 기대한다. 이런 기대가 그들의 퍽퍽한 하루를 또 위로할 지 모를 일이다. 길이 단지 길로 끝나지 않고, 이들에게 큰 희망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포미닛' 같은 '대단한' 아이돌 스타와 나란히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기대는 더 크다.
'상상길'은 지금 약 30m 거리가 만들어졌다. 10월 31일에 모두 완공되면 거리는 155m가 된다.
창동예술촌에서 옛 마산의 막걸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오동동이 가깝다.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지는 안주가 특징이다. 마산어시장도 멀지 않으니 연계하면 멋진 가을 여행된다.
▲ 도시재생어울림센터 앞 느린우체통. 편지를 부치면 파란색 '달이' 우체통은 1달 후에, 노란색 '연이' 우체통은 1년 후에 발송한다.
골목골목, 고운 그림과 조각들이 눈을 깨끗하게 만들고, 구석구석 부려진 곰삭은 시간의 향기가 마음 맑게 만든다. 이러니 발걸음 뗄 때마다 절로 마음 살피게 되고, 지난 삶을 게워내 곱씹게 된다. 다 돌고 나면, 퍽퍽한 일상 버틸 힘 생기고, 도시생활의 생채기도 많이 아문다. 예술은 이런 거다. 티 없는 순진함을 통해 일상을 긍정하게 만드는 것. 서울에서 KTX로 3시간, 창동예술촌에 이렇게 멋진 예술이 있다.
창원=글ㆍ사진 김성환기자 <a href="mailto:spam001@sporbiz.co.kr">spam001@sporbiz.co.kr</a>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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