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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린 모두 이민자이다

입력
2015.09.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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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터키에서 보트를 이용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한 시리아 난민이 딸 아기에게 키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터키에서 보트를 이용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한 시리아 난민이 딸 아기에게 키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린 모두 이민자입니다.”

이달 초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이 봉쇄돼 애태우다 간신히 독일행 열차에 오른 시리아 난민들을 마중하러 뮌헨 역에 나와있던 한 독일인이 밝힌 환영 소감을 외신을 통해 읽으며 잠시 명치 끝이 먹먹해졌다. 수 만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에 정착했다는 학설이 정설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의 발언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영화 국제시장으로 새삼 유명해진 1950년의 흥남철수작전은 기네스북이 공인한 세계 최대규모의 난민탈출 사례다. 나도 난민가족이다. 부친이 해방정국 38선이 공고해지기 직전, 고향 평안북도 박천에서 가족과 함께 배를 빌려 타고 서해로 내려와 백령도 앞 인당수의 거친 물결에 난파될 뻔한 고비를 넘기고 마포나루에 내렸다. 그리스 해변을 향해 조각배에 몸을 실었던 아이란 쿠르디 가족과 별로 다르지 않은 처지였다.

독일사람들이 시리아 난민을 따뜻하게 맞는 배경에는 80여년 전 독일이 사상 최악의 인종차별국이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한때 이민자였다는 보편적 유대감이 사람들의 기억 깊은 곳에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독일 정부가 이웃 국가의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극적인 난민 수용정책을 펼치는 것은 역사적 책임감이나 인류애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 선진국처럼 독일도 출산율 저하로 인구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부 연구에서 독일의 생산가능인구가 2030년이 되면 지금보다 1,000만명 축소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이런 정도 속도의 생산가능인구 감소 추세를 해결할 방법은 사실상 이민 수용밖에 없다.

게다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로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은 대체로 젊고 의욕적이다. 해당국 언어를 구사할 정도로 교육수준이 높은 경우도 많다. 선진국 정부도 이런 점들을 모르지 않지만 막상 적극적 이민수용 정책을 펼치기 쉽지 않다. 이민의 유입은 단기적으로 그 나라 임금저하로 이어져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저항을 부르기 때문이다. 2000년 독일은 정보통신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가 비유럽지역 고급기술자 2만명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취업 희망자는 대부분 인도의 고급인력이었다. 이를 두고 야당은 ‘인도사람 대신 청소년을 양성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반대 여론몰이에 나섰고 결국 슈뢰더의 구상은 흐지부지됐다.

노동력 부족이라는 미래와 현재 유권자의 반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독일 정부로서는 난민수용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경제적 이민자’보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목숨이 위태로운 난민을 수용하면 반대 여론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향후 노동력 부족에 대해 고민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올해 73.0%에서 2030년에는 63.1%로 추락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2030년 생산가능인구 숫자가 현재보다 400만명 줄어드는 것이다. 그 사이 통일된다고 해도 생산가능인구비중 증가효과는 1.7%포인트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나라도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고서는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노동력 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고 유능한 인력이 어떻게든 해외로 나가려는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떠나려는 젊은이보다 들어오려는 젊은이가 더 많다는 점이다.

이민자 수용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나라 문화에 우호적인 고급인력을 보다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양질의 인력이 우리나라에 자리잡고 싶어하려면 그들과 그의 자손들에게 보건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좋은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차별 받지 않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대 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주민’이라는 명제를 우리도 가슴에 새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영오 국제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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