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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개혁 새바람, 바티칸 보수파 완강한 맞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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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개혁 새바람, 바티칸 보수파 완강한 맞바람

입력
2015.09.2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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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무효 절차 신속·단순화 조치, 희년 맞아 한시적 낙태 사면 허용…

재혼 등 금기시됐던 모든 주제 놓고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논의 제안도

"전통 가족관까지 흔든다" 불만 표출…공개 서한·캠페인 등 전방위로 맞서

"다양한 논의 자체가 교황이 원한 것" 교황 지지자들은 개혁에 힘실어 줘

프란치스코(가운데) 교황이 지난해 10월 6일 바티칸에서 열린 시노드에 참석해 성직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바티칸=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가운데) 교황이 지난해 10월 6일 바티칸에서 열린 시노드에 참석해 성직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바티칸=AFP연합뉴스
19일 쿠바 하바나 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가운데) 교황이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오른쪽) 대통령과 함께 환영 인파에 손을 흔들며 걷고 있다. 하바나=AP 연합뉴스
19일 쿠바 하바나 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가운데) 교황이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오른쪽) 대통령과 함께 환영 인파에 손을 흔들며 걷고 있다. 하바나=AP 연합뉴스

지난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에 도착하면서 열흘간의 쿠바, 미국 방문을 시작했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의 숨은 공로자로 평가 받는 교황은 이번 방문에서 “양국 사이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황의 미국 방문에 대해 평화 사절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개혁 바람이 불고 있는 바티칸의 수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주의 국가에 방문한다는데 의미를 더 두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이혼율이 40%가 넘고 대법원이 최근 동성결혼까지 합법화시키며 곳곳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의 자리에 오른 이후 빈곤과 난민문제, 기후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그 동안 죄악시해온 이혼과 동성애 등도 포용의 뜻을 밝히며 교회 개혁 바람을 몰고 왔다. 그의 미국 방문을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교황의 거침없는 개혁 행보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봤던 가톨릭 교회의 보수주의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바람이 전통적인 가족관까지 흔들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며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세계주교회의서 교황의 개혁 좌절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일 교황이 기존 가톨릭 교회의 관례를 뒤집는 개혁 행보를 보이면서 내부적으로 보수파의 반발로 씨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고위직 7명을 포함한 바티칸 인사 1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교황의 개혁 행보로 1960년대 이후 가톨릭 내부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지난 8일 교황은 ‘모투 프로프리오’(자발교서)를 통해 가톨릭 교회 내에서 결혼을 무효로 하는 절차를 빠르고 단순하게 하는 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결혼을 영원한 것이라고 가르치며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이혼을 위해서는 애초부터 결혼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결혼을 무효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에서 결혼 무효 결정을 받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결혼 무효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비싸 일반 신도가 접근하기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결혼 무효화 결정 없이 교회 밖에서 재혼한 신자들은 부정을 저지른 죄인으로 여겨지며 미사 중 진행되는 영성체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 살인 같은 중범죄자도 회개하면 영성체 의식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혼과 재혼에 배타적인 교회의 가르침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결혼은 ‘절대로 갈라설 수 없는 관계’라고 전제하면서도 새로운 개혁 조치가 신도들이 정의를 찾을 수 있도록 결혼 무효화 관련 절차를 신속하고 단순화하는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혁 조치는 필요한 모든 절차를 45일 이내에 끝내도록 하고 첫 결정이 내려진 후 자동 이의신청제도를 없앤 것이 큰 특징이다.

여기에 일주일 전인 지난 1일 교황은 낙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자비의 희년을 맞아 모든 사제에게 낙태죄에 대한 사죄의 권한을 주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황이 오늘날 가정의 현실적인 측면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난해 교황 즉위 후 처음으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서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2주간 열린 시노드에서는 이혼과 재혼, 동성결혼, 피임, 혼전섹스 등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금기시됐던 모든 주제를 놓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졌다. 교황은 당시 개막식 미사에서 “시노드는 아름답거나 고상한 생각만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실제로 당시 시노드에서는 동성애, 동거, 이혼을 포용하고 인정하자는 취지의 중간 보고서가 발표됐다. 그러나 41명의 주교 및 추기경들이 회의장에서 이에 즉시 반대했고, 대다수 주교단이 반대표를 행사하면서 최종 보고서에서는 일체의 교리나 입장의 변경은 없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료미사에서 “앞으로 논의는 계속될 것이며 숙성을 위한 1년의 기간이 남았다”며 “우리는 씨앗을 뿌렸고 내년(2015년) 시노드 회의 때까지 인내를 갖고 지켜보자”고 말했다. 미국의 가톨릭 전문지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는 주교 시노드 최종 보고서에서 동성애자 문제 등이 제외됐지만, 교회에서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된 것 자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리이며 그가 바랬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첫해인 2013년 ‘가정’을 주제로 2014년 시노드 임시총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이 주제를 2015년 정기총회에서도 이어가겠다고 한 바 있다. 여기에 교황은 전세계 교회에 혼인준비와 동거, 별거와 재혼, 동성결합, 가족 계획 등 구체적 사안을 질문한 설문조사를 요청했고 여기서 도출된 최종보고서가 올해 정기총회를 준비하는 의제개요가 됐다.

보수 바티칸, 자유주의 바람에 총공세

교황의 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바티칸 내 보수파들의 반발이 점점 커지고 있다. 수천년 이어온 가톨릭 교회의 266번째 수장인 교황을 향한 공개적 불만 표출이 이어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반발은 직접적인 공개 비판뿐만 아니라 보수적 가톨릭 웹사이트, 보수파 성직자들이 지원하는 책들과 홍보물의 출판, 바티칸 개혁 기구에 대한 잡다한 트집거리들이 언론에 유출되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전통적인 가족관을 바꿔야 한다는 진보 성직자들의 거센 요구에 대한 교황의 태도를 우려하고 있다. 한 바티칸 관계자는 “지금 우리는 성직자들이 동성결합이나 간음 등 교회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그럼에도 교황은 이들을 침묵시키고자 하지 않고 있어, 결국 이것이 교황이 원하는 길이라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보수파 기수는 미국 위스콘신 출신 레이몬드 버크 추기경이다. 그는 올해 초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교황의 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교황이 교리의 가르침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교황은 주어진 권한에 대해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라며 교황의 연이은 파격 행보에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의 토머스 토빈 주교는 “가톨릭 교회가 용기 있고 예언적인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위험에 처했다”고 비판했으며 버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 교회가 ‘키 없는 배’와 같다며 교황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보수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그를 규탄하기 위해 ‘혼란’이라는 완곡 어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500명의 영국 가톨릭 사제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혼하거나 동성애자인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공개 제안하는 발언이 공개된 지난해 시노드를 지적하며 “가톨릭의 도덕적 가르침”에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작성하기도 했다.

보수파들은 또 언론에 프란치스코 교황 측근 비리 의혹을 흘리며 개혁파에 타격을 입히기도 한다. 올 3월 이탈리아 언론에는 조지 펠 추기경이 담당하는 교황청 경제사무국이 출범 6개월 만에 50만유로(약 6억 2,000만원)을 지출해 공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교황청 경제사무국은 방만하게 운영돼 온 교황청의 재정을 개혁하기 위해 출범한 금융감독 기관으로, 펠 추기경의 재정 감시가 기존 바티칸 관료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던 차였다. 바티칸은 서류의 언론 유출에 대해 옹졸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보수파들은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올해 시노드 정기총회를 앞두고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버크 추기경과 카를로 카파라 등 5명의 보수파 고위 지도자들은 이혼한 신자를 영성체 의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대항해 ‘메니페스토’라고 알려진 초안을 만들었으며 올 7월 유럽과 호주의 수백개의 교구에 보수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지지하는 가르침이 담김 DVD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황의 지지자들은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처럼 다양한 논의 그 자체가 교황이 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교황의 가까운 친구로 알려진 미국 시카고의 블라세 J. 쿠피치 대주교는 “교황은 이러한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며 “그는 이 논의가 어디로 가야할 지 미리 결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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