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법안 강행처리에 대규모 반대시위…내년 참의원 선거 분수령
외조부 기시 전 총리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 후폭풍에 퇴진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안보법안의 표결을 강행한 가운데 밀어붙이기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찬성을 압도했고 국회 앞에서 연일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렸지만 아베 정권은 결국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처리했다.
아베 정권은 당초 목표한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이뤘지만, 여론의 반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지율 변화와 내년 참의원 선거 결과 등이 헌법 개정까지 노리는 아베 구상의 실현 가능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 위헌 논란에 불붙은 반대여론…회기 종료 임박하자 강행 = 전후 70년간 이어진 일본 안보 정책을 바꾸는 집단자위권 구상은 그 시발점인 헌법 해석 변경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작년 7월 아베 내각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인 나라가 무력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음에도 이를 막을 다른 수단이 없으면 필요 최소한의 실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각의 결정했다.
역대 내각이 이어온 헌법 해석을 일개 내각이 바꿀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으나 아베 정권은 이를 토대로 11개 법률 제·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6월 초 자민당의 추천을 받아 중의원 헌법심사회에 출석한 하세베 야스오(長谷部恭男) 와세다(早稻田)대 교수 등 3명이 모두 이들 법률안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7월 중순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여당이 표결을 강행하자 국회 주변에서 주최 측 추산 약 6만 명이 항의 시위를 하는 등 반발 여론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안보 법안은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여당의 주도로 가결됐으며 반대 시위는 도쿄뿐만 아니라 오사카(大阪), 요코하마(橫浜), 나고야(名古屋)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어린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단체로 집회를 하고 대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인 '실즈(SEALDs)'가 시위 현장을 돌며 활기를 불어넣는 등 다양한 집단이 반대 시위 대열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정권 내에서는 "비교적 평온하지 않은가"(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간사장)라며 여론에 귀를 막은 듯한 반응마저 나왔다.
이후 내각 지지율이 30%로 하락해 아베 총리 재집권 후 최저치를 기록하자 정권 내부에 위기감마저 감돌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 발표 후 지지율이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고 여당은 이달 27일인 정기국회 회기 종료가 임박하자 참의원 심의 완료를 서둘렀다.
야당은 16∼17일 참의원에서 복도를 점거해 회의 진행을 지연하고 특위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해 시간 끌기를 시도했다.
여당은 17일 오후 야당이 필리버스터(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고자 행하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전략으로 제출한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참의원 평화안전법제 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불신임안이 부결시켰고 직후에 소속 의원들로 단상을 에워싸고서 기습적으로 법안을 표결했다.
야당은 이후 아베 총리와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 등 각료에 대한 문책 결의안 등을 제출했으나 시간 끌기 전략으로 표결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여당은 19일 오전 참의원 본회의에서 표결을 강행해 11개 법안의 제·개정을 완료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주변에서 주최 측 추산 12만 명이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연일 반대 여론이 분출했다.
18일 국회 주변에 주최 측 추산 약 4만 명이 운집했고 시위가 19일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여론의 압력이 아베 정권의 폭주를 바로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 연휴 이후 여론 주목…내년 7월 참의원 선거서 심판하나 = 일단 이번 주말부터 23일까지 이어지는 연휴가 당장 여론의 향후를 가르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여당은 연휴를 거치는 동안 안보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사그라들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확산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발이 쉽게 수그러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즈의 핵심 구성원인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 4학년 오쿠다 아키(奧田愛基) 씨는 이달 15일 참의원에 출석해 "만약 법안 표결을 강행한다면 전국 각지에서 지금까지의 반대 여론을 뛰어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연일 국회 앞에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다음 선거에도 물론 영향을 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는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층의 시위 참여가 이어졌고 일부러 지방에서 도쿄까지 올라와 참가한 이들도 확인되는 등 심상치 않은 징후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 반대에 반대하며 1959∼1960년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격렬한 이른바 안보투쟁과 최근 상황이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한 것을 당시에는 여론을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적으로 평가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주 거론했다.
기시 전 총리는 안보조약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으나 국회 의사당을 포위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시위대 중 사망자가 나오면서 '기시 정권 타도'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내각 총사퇴를 결정했다.
아베 총리는 안보 정책을 전환하면서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고 최근 시위에서 '아베 정권 퇴진' 구호가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그가 외조부와 상당히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하는 관측통들도 있다.
아베 총리가 당장 정치적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안보법제 외에도 적지 않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앞서 민주당 정권이 수립한 '원전 제로 정책'을 폐기해 최근 23개월 만에 원전을 재가동한 데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권을 지탱하는 근간인 아베노믹스(경제정책)가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대규모 금융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로 일본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정책적 독려 속에 명목 임금이 상승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일본의 등급을 하향 조정해 한국보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등 거액의 재정 적자를 떠안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경제 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2017년 4월 소비세율 2차 인상(8→10%)을 계기로 경기가 다시 침체하면 이 역시 악재가 될 수 있다.
일단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어떻게 변할지가 관건이다.
이후에는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 결과가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과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내세운 개헌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간 평가가 될 전망이다.
참의원 선거까지는 10개월가량이 남았기 때문에 아베 정권은 경제 정책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한국이나 중국 등 이웃 국가와의 외교 성과 등을 중심으로 민심 잡기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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