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니 물었더니 "이응이응" 야단 맞고서는 "지읒시옷"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밥 먹었니 물었더니 "이응이응" 야단 맞고서는 "지읒시옷"

입력
2015.09.19 04:40
0 0

비하·속어 등 부정적 표현 유행

SNS 타고 전파 빨라져 더 문제

사회적 소통 단절 우려

청소년기 인격 형성에 악영향

맞춤법 모르고 어휘력 저하도

청소년들이 쓰는 신조어는 그 원리를 딱히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줄임말, 소리 나는 대로 적기, 외국어 합성, 초성사용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자판을 두드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줄임말이나, 초성 사용이 범람하는 카카오톡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문자 습관이 생활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는 양상이다.

사실 문자메시지에서 웃는다는 의미로 쓰는 ‘ㅋㅋ’ ‘ㅎㅎ’이나 ‘ㅂㄷㅂㄷ’(부들부들) ‘ㅊㅋㅊㅋ(축하축하)’ ‘ㄴㄴ’(노노) ‘ㅇㅇ’(응응) 등의 초성자 사용은 이제 성인들의 ‘문자질’에서도 일반화했다. 청소년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문자생활을 구어에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지시나 요구에 대해 답을 할 때 “응”이 아니라 한글 자음 ‘ㅇ’을 그대로 따와서 “이응”이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상당수다. “기역 시옷”(감사)이라거나 “지읏 시옷”(지읒시옷·죄송)이라고도 한다. 과거 부모 잔소리에 “어쩌라고요”라는 답으로 불만을 표시했다면 지금은 “어쩔”이라며 어간만 쓰고, 어미를 그냥 생략해 버린다. 물론 이러한 경향성은 젊은층에서도 나타난다. 커피 전문점에서 아이스커피 대신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프사’(프로필 사진) ‘쓰봉(쓰레기봉투)’ ‘엘베’(엘리베이터)로 줄여 말하는 이들도 늘었다.

확대되는 언어 파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래 집단의 동류의식, 동질성 강화 목적에 따른 신조어 사용과 이에 따른 세대 간 언어 괴리의 불편함은 분명하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지난 7월 청소년이 주로 쓰는 단어의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노잼’(부정어 NO와 재미를 합성. 재미없다는 뜻)을 알고 있는 60대 이상은 3.7%, 50대는 16.7%에 불과했다. 10대 청소년 부모 세대인 40대도 뜻을 안다(41.5%)는 답이 절반도 안됐다. ‘낫닝겐’(영어 Not+인간의 일본어 닌겐 합성. 인간이 아니라 신과 같다)은 더 심각해 30대도 20.6%만이 파악하고 있었다. 40대(2.5%), 50대(0.6%), 60세 이상(2.3%)에는 외계어나 다름없다. 이는 물론 방송의 자막이 부추기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영국 교육부는 최근 청소년 자녀와 부모의 불통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학부모들을 위한 소셜미디어 사전을 모은 사이트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IWSN(I want sex nowㆍ지금 성관계를 원한다) 등 약어 채팅용어들이 주를 이룬다. 단어나 문장을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 말을 줄이는 현상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따라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창의적인 조어법에 정색할 필요가 없다는 전문가도 없지 않다. 최상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파생과 합성을 통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청소년들이 만들고 있는 독특한 문자문화, 언어습관이 국어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언어유희까지 통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언어 규칙 자체가 가변적이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양한 쓰임새도 적정범위에서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SNS 등 속도감 있고 전파 범위가 넓은 매체를 타고 틀린 말이 굉장히 빨리 퍼져 문제”라면서 청소년 언어를 적정선에서 수렴할 것인지 고쳐야 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라고 했다.

문제는 청소년이나 젊은층이 만들어 내는 신조어의 질이다. ‘개(케)’ ‘존’ 등 욕설, 폄하ㆍ비하 관련 단어, 비속어, ‘자살각’이나 ‘헬조선’같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단어 사용례가 대부분이다. 줄임말 역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처럼 부정적인 용어가 많다. 청소년들이 20어절에 한 번꼴로 비속어나 은어 등을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조사’ )도 있다.

우리말을 잘 아는 외국인들도 이러한 언어사용에 불편해한다. 3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 유학생 카와노 카호(22ㆍ경희대 문화광광콘텐츠 2학년)씨는 “한국 학생들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존나’ ‘개빡’ 같은 말을 많이 쓰는데 뜻을 알고 나서 깜짝 놀랐다”며 “친한 친구들 사이에 비속어를 일상적으로 써 이상했다”고 말했다. 한자 등 철자를 틀리면 창피해하는 일본 학생들에 비해서 한국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그런 말들을 쓰고 있는데 언제까지 쓰는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한국 생활이 5년째인 몽골인 아미나(21ㆍ생물학과 1학년)씨도 “최근 많이 쓰는 ‘헬조선’ 같은 신조어처럼 부정적인 말이 많이 만들어지고 유행도 빠른 것 같다”며 “청소년 정서에도 안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소년기의 잘못된 언어 사용이 인격 형성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짧고 멋대로인 또래 언어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길고 어려운 글은 아예 읽으려 들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청소년 언어 습관 개선에 사회나 학교, 가정에서의 노력이 부족한 측면도 없지 않다.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접수된 ‘청소년 언어개선 실천사례 보고서’를 보면 대구 경북여고 1학년 한 반은 비속어 바로잡기 운동을 펼친 결과 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보고했다. 처음엔 줄임말, 비속어를 사용하지 못 하는 게 힘들었고, 화가 날 때 답답했지만 욕을 사용하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광주 서강고등학교 1학년 강바다는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해보니 하루에 부정적인 언어(욕설, 비속어, 상처 주는 말 등)를 사용하는 평균 횟수가 50회 이상(19.4%), 30~50회(39.2%)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지만, 말 뜻을 잘 모르는 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인천해원중학교 국어교사 백자영씨는 “청소년들이 쓰는 말이 지속성이 짧아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보지만, 편의대로 말을 만들어 쓰는 습관 때문에 문법이나 맞춤법을 잘 모르거니와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어휘력 수준도 낮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