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을 다 죽여야 하는데" 중얼
경찰, 범행 실행여부 수사… 영장 신청
검거 피하려 가짜 번호판ㆍ국도 이용
‘트렁크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일곤(48)이 체포 당시 자신에게 피해를 줬다고 생각하는 명단을 적은 메모지를 소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단순한 강도 목적이 아닌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8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가로 15㎝, 세로 20㎝ 크기의 메모지 2장에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와 사건을 조사한 형사, 식당 주인 등 28명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일부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의사, 간호사 등의 직업만 기재돼 있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픈데 강제 퇴원시켰다(의사)” “불친절했다(간호사)” “폭행 사건 때 붙잡은 형사” “징역 5년을 때렸다(1992년 절도 사건담당 판사)”며 리스트 작성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1987년 절도죄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은 뒤에도 계속해서 서울과 대전, 전주 등에서 절도 행각을 벌여 출소 후 3~5개월 만에 재수감되는 등 6차례 복역했다.
경찰은 명단에 오른 28명을 상대로 김씨가 보복범죄를 계획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혼잣말로 ‘이것들을 다 죽여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피해자 주모(35ㆍ여)씨를 살해한 후 증거인멸을 위해 차량에 방화하고 동선을 숨길 목적으로 고속도로 진ㆍ출입 과정을 조작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성동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김씨가 ‘차량 안에 자신의 유전자도 남아 있어 (차량을) 그냥 두고 가면 경찰에서 범인으로 특정할까 봐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실제 경찰 감식 결과, 주씨의 차량 내부에서 김씨의 쪽지문 7개가 발견됐다.
그는 범행 후 검문에 걸리지 않도록 가짜 번호판을 이용했다. 10일 울산에서 길거리에 주차돼 있던 제네시스 차량의 앞 번호판을 훔쳐 달고 서울로 향한 김씨는 경부고속도로에 진입 시에는 통행권을 뽑았지만, 이튿날 새벽 서울 톨게이트에서는 하이패스 통행로를 택했다. 서울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국도만 이용했다.
김씨는 현재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식사도 거른 채 진술을 거부하는 중”이라며 “제3자가 다가가면 말을 멈추고 노려보면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날 강도살인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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