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장로 교단 중에서는 처음으로 목회자의 자진 납세를 결의했다. 기장은 지난 16일 열린 100회 총회에서 “목회자도 세금을 내는 것이 타당하고, 근로소득세 기준에 맞춰 원천 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기장 총회의 이번 결의는 권고사항이어서 소속 목회자의 납세를 강제할 수 없다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종교인 과세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개신교 내부적으로 종교인 납세에 대한 공감과 타 교단의 동참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남은 것은 정치권이 종교계 눈치를 살피지 말고 종교인 과세 입법화를 조속히 완료하여 조세형평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종교인의 납세는 너무나 당연한 의무다. 헌법 38조는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종교인도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납세를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국세청이 1968년 도입을 시도한 이래 지금까지 종교인 납세 입법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종교인들의 거센 반발과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종교계는 국가 조세권이 작동하지 않는 무풍지대로 방치돼 온 것이다.
그러나 종교인 과세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요구가 돼 있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국민 75.3%가 종교인에 과세해야 한다고 답했고, 기독교인 중에서도 72%가 목회자의 세금 납부에 찬성했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사제들의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고 불교계의 승려와 개신교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개별적으로 납세에 동참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대형 교회들이 “목회자 활동은 근로가 아니다”라고 강변하며 납세에 반발하고 있지만 얼토당토않다. 기장 총회는 이 같은 주장을 겨냥해 “근로는 하나님이 맡긴 거룩한 소명이며, 목회자가 수행하는 역할 역시 근로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납세 의무를 억지 논리로 계속 회피하면 국민들의 시선만 싸늘해질 뿐이다.
정치권은 종교인 과세 입법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 8월 정부는 종교인 과세 방안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종교인의 세 부담은 크지 않다. 소득의 20~80%를 필요경비로 공제해주기 때문이다. 과세 대상도 전체 종교인 23만 명 중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연봉 4,000만원 이하 종교인은 면세점 이하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과세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입법화마저 미룬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국회는 기장 결의를 계기로 종교인 과세의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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