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활동하는 회원이 게시판에 한 언론사 기자의 소속 매체명과 기자 이름을 살짝 변형해 소설 형식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벌금을 물게 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부장 한영환)는 모욕죄 혐의로 기소돼 지난 4월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회사원 고모(32)씨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고 17일 밝혔다.
고씨는 지난해 1월 일베 게시판에 ‘○○뉴스 ○○○ 기자가 일베 전문기자가 된 이유’라는 제목으로 쓴 소설을 올렸다. 이 제목은 실제로 있는 매체의 이름을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고 소속 기자인 A씨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것이었다. 고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말을 빌려 “너는 기사가 후지다”, “내가 봤을 때 넌 재능이 없다”, “저 욕먹고 더러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XX라는 욕 먹어도 되니까 조회수 폭발하는 기사를 쓰면 되는 거죠” 등 기자를 모욕하는 언급을 했다.
이 게시물을 본 일베 회원들은 A씨의 실명을 거론하며 댓글을 달았다. A씨가 그간 일베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 온 탓에 고씨를 비롯한 일베 회원들은 욕설이 섞인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A씨가 고씨를 모욕 혐의로 고소하면서 고씨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을 선고 받았다.
고씨 측은 1심에서 허구의 인물에 대한 소설을 쓴 것에 불과해 피해자를 모욕하려는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일베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써온 점과 이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일베 회원들이 많았고 고씨도 그런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고씨가 피해자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일베 회원들이 소설 속 기자가 A씨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고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A씨를 경멸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씨는 다시 한 번 “일베에 올린 글은 A씨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창작활동의 하나로 소설을 쓴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모욕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역시 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소설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표현 양식이나 글의 전체적인 내용 등에 비춰볼 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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