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소통에 목마른 청년들
온·오프 오가며 감상 나누고
각자 책 골라 서평 쓰고 돌려봐
취향 따라 함께 읽는 모임 인기
“2030 청춘남녀가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좋은 책 함께 나누면 사랑도 지혜도 더욱 풍성해질 거예요. 함께 해요.”
‘청춘독서모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마련된 그룹 소개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2030들이 책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온라인에 마련된 이 공간은 현재 4,356명이 가입된 곳으로 커졌다. 자연스레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독서모임으로 이어졌다.
지난 12일 청춘독서모임이 열린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모인 이 날은 ‘숫자와 수식이 없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됐다. 발제자 이동영(29)씨가 “이 책에는 어른들은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나이가 몇 살이고 아버지 수입은 얼마인지 같은 것만 물어보고 비로소 그 친구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는 구절이 있다”며 제안한 것이다. 이씨는 스스로를 ‘매일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며 훌쩍 여행을 떠나고픈 청춘’이라고 소개했다. 2년 반쯤 전 전북 군산에 살던 때부터 이 모임에 나온 그는 “책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나오게 된 이 모임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평소보다 적은 10명이 참여했는데 이중 3명이 처음 나온 사람이었다. 금광훈(22ㆍ숭실대 경영학과 1학년)씨는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해 눈팅만 하다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어린 왕자’를 읽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와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에 이어 두 번째 이 모임을 찾은 유치원 교사 조아영(29)씨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작가 얘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갈증이 있어 이 모임에 온다”며 “한 직장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만 만나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하게 지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 나랑 다른 생각 가진 사람들 만나니까 깨어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청춘독서모임은 2010년 20대 후반이 주축이 되어 시작돼 이제는 중심 나이대가 30대 초중반으로 올라왔다. 대학생부터 30대 중후반까지 있지만 사회초년생이 수적으로는 가장 많다. 이제는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멤버만 60명 정도가 될 정도로 자리잡았다. 페이스북 그룹에 독서모임 공지를 올리면 하루 이틀 만에 20명이 다 차는 일도 종종 있다. 청춘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송화준(32)씨는 “60명이 번갈아서 참석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몇 명씩 오면서 올해는 평균 15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말했다. 송씨 역시 전역한 24세 때부터 독서모임을 하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독서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지적 갈등도 있지만 소통에 대한 갈증이 있다”며 “이곳에 오면 편하다거나 나를 끄집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함께 읽는 것”
책 읽는 2030들은 한결같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함께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꽤 많은 독서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판소셜벤처 북티크가 운영하는 ‘토요 묵독파티 독서모임’도 그 중 하나다. 평소 책과 거리가 먼 예비 독자들을 책의 매력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해 나온 결과다. 고정 멤버 개념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모임이다. 권인걸 북티크 매니저는 “사람들이 책과 친해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책이나 독서모임은 재미없다, 지루하다, 지적 허세다 같은 이미지 한계 때문”이라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이 모임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정해서 읽은 후 이야기를 나누는 보통 독서모임과는 좀 다르다. 정해진 책을 다 읽고 와야 한다는 부담을 줄이고,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묵독시간을 마련했다. 2시간의 개별 독서 시간이 끝난 후 각자 읽은 책의 감상을 나누는 북토크로 이어진다.
이 독서모임은 끈끈한 결속력으로 지속되는 독서모임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변호사 정호정(29)씨는 “자유롭게 취향에 맞는 책을 읽되 고독하지 않게 더불어 책 읽는 모임을 원했다”며 “조용히 자기 속도로 책을 읽고 사색하는 작업이 독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데 묵독은 일정한 시간 같은 공간에 모여 독서 자체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서 본질에 가장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동진(28)씨는 “잔잔한 음악 아래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더 잘 읽게 만드는 환경이 조성된다”며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열 명의 사람이 함께 대화 나누면 열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은 배움을 얻게 된다”면서 독서모임의 장점을 설명했다. 서로 다른 책을 읽고 모이다 보니 한 책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긴 어렵지만, 평소 접하기 어려운 책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게 이 모임의 장점이다. 북티크는 서울 강남구에 카페 겸 서점을 운영하면서 독서모임뿐 아니라 저자와의 만남, 강연 등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책수다에서 서평쓰기까지
스펙쌓기에만 내몰려 독서와는 담 쌓았을 것 같은 취업준비생들도 책 읽기 고유의 즐거움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8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김성인(25)씨는 작년부터 친한 대학 후배 2명과 편하게 책수다를 떠는 모임을 결성했다. 책방과 챗방이라는 의미의 ‘성인챇방’으로 이름지었다. 관심 분야가 다양한 김씨는 평소 소모임과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진이 빠져 이 모임을 만들게 됐다. 그는 “같이 책을 봐도 책 자체에 집중을 못하고, 다음주는 누가 발제하고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항상 이런 고민만 하면서 활동 자체보다 조직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게 되더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오후 3시쯤 만나 카페에 가거나 5시쯤 만나 맥주집에 가는 ‘정말 책 읽고 수다 떠는 편한 모임’이다. 그는 “책임감이나 스펙을 쌓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게 취미 생활하는 기분으로 만난다”며 “책이라는 본질에 집중해서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다음 모임에서는 김씨가 혼자만 좋아하기 아까워 강력히 추천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기로 했다.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 중인 박병찬(19)씨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완독했고, 최근에는 프리드리히 키를러의 ‘광학적 미디어’를 읽고 있다. 작년 겨울방학 때부터 ‘응용기호학연구회’라는 과내 학회 활동을 하면서다. 사회학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수업 시간에는 소화할 수 없는 사회학 책을 깊게 읽는 모임이다. 박씨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 기대했던 ‘지성의 장’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며 “사람이 많아 깊이 있는 주제로 대화하기 어려운 수업 시간과는 달리 소모임에서는 선후배들과 토론하면서 사고를 넓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한 챕터씩 천천히 읽는다. 한 학기에 한 권을 제대로 독파하는 게 목표다.
놀라운 건 신입회원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에도 6명이 새로 들어왔는데 이중 4명이 새내기다. 박씨는 “학문적 깊이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사회학이나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도전하러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읽는 데서만 그치지 않는다. 독서모임 ‘리플(Reading People의 줄임말)’은 함께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게 특징이다.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소설과 비소설 각각 4권씩 선정한 후 이중 한 권 이상을 읽고 서평을 써서 제출한다. 이렇게 모인 서평을 다 같이 읽는 모임이다. 그런 후 각자 이야기하고 싶은 책에 대해 자유롭게 모여 토론하고, 우수 서평은 시상도 한다. 서평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하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정회원 48명에 준회원만 200명 정도인 탄탄한 모임으로 성장했다. 보통 40명 가까이 매번 모임에 참여한다. 리플을 운영하고 있는 박영욱(27ㆍ홍익대 경영학과)씨는 “3년 간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책을 좋아하는 2030세대가 주변에 많다는 점”이라며 “다만 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적어서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이 내 삶을 변하게 했다.” 독서모임에 빠진 2030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김지선(24)씨는 오전 7시에 시작하는 독서모임에 나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난다. 김씨는 “회사, 집, 회사, 집만 반복하다 어느 순간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더라”며 “그러던 차에 독서모임에 나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책이 길잡이가 되어줬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했지만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김씨는 “책을 통해 얻은 게 너무 많아서” 이제는 주변 친구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고 다닐 정도다. 그는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책을 읽을 때인 것 같다”며 “특히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 사람들과 책 한 권을 두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경험은 재미가 있는 건 물론 무료한 삶에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김주리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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