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스펙·열린 채용에 지원자 몰려
'인재 찾기' 묘책들 쏟아져
자기소개서 항목 더 까다로워져
은행권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최근 집 근처 우리은행 지점을 방문해 체크카드를 발급 받았다. 목적은 다름 아닌 우리은행 자기소개서 항목 중 하나인 ‘우리은행 영업점과 다른 시중은행 영업점을 직접 방문하고, 우리은행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비교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체크카드를 발급 받는 과정에서 직원과 상담하며 느낀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녹여 썼다. 김씨는 “금융권은 당일에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주문에 난감해 하는 친구들이 있다”며 “하지만 우리은행에 진짜 관심 있는 지원자를 뽑는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은행권 채용 시장에서 탈(脫)스펙 바람이 거세지면서 모래알 같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진주’를 찾기 위한 은행별 아이디어 전쟁이 치열하다. 안정적이고 연봉 높은 일자리의 대명사인 은행들이 채용 과정에서 어학점수, 자격증 등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동시에 ‘허수’ 지원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 상황. 이에 따라 이들을 걸러내기 위한 묘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항목의 난이도를 대폭 높이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16일 서류접수를 마감한 우리은행은 지난해에 이어 지원서에 학교와 학점을 제외하고 자격증, 어학성적, 어학연수 여부를 적는 칸을 모두 없앴다. 대신 자기소개서에 ‘우리은행 영업점과 다른 시중은행 영업점 비교 체험’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의 위기와 기회’라는 항목을 포함시켜 지원자의 실제 ‘입행 의지’와 ‘금융권 관심도’를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매년 100대 1 안팎을 기록하던 경쟁률이 탈스펙 전형으로 바뀌었는데도 이번에 소폭 하락했다”며 “자기소개서 항목을 예년에 비해 더 까다롭게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번에 신입행원 200명을 채용한다.
이날 서류접수를 시작한 신한은행도 평소 ‘신한문예’로 불릴 만큼 고난이도 자기소개서로 유명하다. 신한은행 인사담당자는 이번 자개소개서 항목 중 당락을 가를 것으로 예상하는 두 가지 질문으로 ‘최근 대형은행의 합병, 인터넷 은행의 등장 등 국내 은행권 경쟁이 심화되고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현재 신한은행의 장점과 단점을 기재하고 신한은행이 향후 취해야 할 전략에 대해서 기술해 주세요’와 ‘신한은행의 핵심가치와 관련 있는 인문학 서적을 선택하고, 그 책을 선택한 이유와 책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기술해 주세요’를 꼽았다. 윤승욱 신한은행 경영지원그룹 부행장은 “지원자들이 신한은행을 정해서 염두에 두고 진정성을 가지고 지원하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서윤 CDC취업컨설팅 대표는 “은행들이 단순히 취업을 위해 원서 100개, 200개를 쓰는 지원자를 피하고 업종과 해당 직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뽑으려고 하다 보니 자기소개서에 관련 항목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채용이 진행 중인 IBK기업은행은 ‘당신을 보여주세요!’ 라는 전형으로 탈스펙과 허수 가리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해당 대회 참가자들은 4분 동안 자신의 강점과 잠재력을 자유롭게 홍보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구두로 하는 자기소개서’인데, 여기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지원자에게 서류전형에서 가산점을 부여한다. 서류접수와 별도로 진행하고 최종합격을 위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은행 입행에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다 보니 지원자가 몰리고 통상 500명 정도에게 기회를 준다.
산업은행은 허수 지원자 필터링을 위해 ‘수기 자기소개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산은은 자기소개서의 3가지 항목 중 하나인 지원동기를 자필로 써서 사진 파일로 첨부해야 한다. 산은 관계자는 “다른 회사 지원서에서 복사하고 붙여 넣기를 하는 지원자들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진짜 지원자를 골라낸다는 명분 아래 서류전형의 난이도와 절차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필기나 면접 기회를 주기 위한 자격 판단용인 서류전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광모 경희대 취업스쿨 겸임교수는 “서류전형을 강화해 허수를 걸러낸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기소개’라는 취지에서 벗어나 전략기획서나 아이디어 기안문 수준의 고난이도 답이나 그 회사에 들어가서 배워야 할 전문성 있는 내용을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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