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논의되어 온 노동시장 구조개혁 의제들이 13일 저녁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합의되었다. 최종 과정에서 근로계약의 변경 및 해지와 관련된 쟁점에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하던 노사정은 쟁점 사안에 안전핀을 달아 놓는 전략으로 조정안에 합의했다. 16페이지에 달하는 합의문에는 통상임금, 근로시간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의 노동시장 불확실성 제거를 위한 의제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개선 그리고 노동시장 활성화 등을 위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방안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실업급여제도 개선 등의 사회안전망 확대 방안과 청년고용 활성화를 위한 노력 내용도 합의에 포함되었다.
비판과 논란은 있으나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번 합의문에는 우리 노동시장의 미래형 체제 전환을 위해 긴요한 내용들이 여럿 존재한다.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체계 개편은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동시장 구조 전환의 핵심 요소들이다. 실업급여 지급시기 연장 및 수준 인상 그리고 대상 확대 등은 근로자들의 직장 전환 비용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과 중소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고임금 근로자 임금 양보도 주목되는 합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상의 의미 있는 합의가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노사정은 근로계약의 변경 및 해지와 관련된 쟁점의 조정 취지와 합의 전제를 존중해야 한다. 두 가지 이슈에 대한 합의의 핵심은 쟁점 요소의 입법적 조정을 위해 노사 및 전문가가 제도 개선의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논란이 되었던 정부의 행정지침은 제도 개선안이 마련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일시적 조치로서 노사정간 협의를 조건으로 했다.
따라서 노사정이 우선 노력할 일은 전문가들과 함께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 개혁의 입법적 대안 마련에 착수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근로계약 관련 행정지침이 노사와의 형식적 ‘협의’로 설계되거나 적용과정에서 오·남용되는 경우 합의의 핵심인 제도 개선의 과정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행정지침’은 노사정 합의의 정신에 기초해 무분별한 해고를 방지하고 고용계약의 질서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이 성과를 얻기 위한 두 번째 요건은 합의 내용의 이행과 적용을 관리할 방법론적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노사정은 다수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은 논의하고 합의한 바 있다. 사실 이번 합의문의 내용 중에는 과거 노사정간 합의되어 이행이 예정되었던 이슈들이 여럿 존재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실 근로시간 단축 등이 대표적이며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합의도 다수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내용들은 정권이 바뀌거나, 노동조합 리더십이 교체되는 경우 무시되거나 부정되었고 새로운 합의가 이를 대체하는 관행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으로는 노동시장의 미래형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사정은 이번 합의 결과가 어떻게 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이행을 위한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관리해야 한다.
세 번째, 이번 노사정 합의는 쟁점이 되어 결론에 이르지 못한 핵심 이슈들을 추후 논의 과제로 이월했다는 점에서 노동시장 개혁 논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월 의제는 논의 과정의 핵심 쟁점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데, 고용계약의 변경 및 해지,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의 고용 안정, 최저임금 결정 기준 조정,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및 적용 제외 제도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의제의 난이도와 중요성 수준을 고려하면 모든 이슈들이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없는 무거운 쟁점들이다. 따라서 노사정은 남겨진 이슈들을 정리하고 조정할 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기존의 대화 구조를 혁신적으로 재편하는 한편 논의를 위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설계해 제시해야 한다.
이제 1단계 합의를 정리할 책임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는 정치공학적 셈법을 버리고 우리 노동시장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여당은 노사정 합의를 넘어서는 의제들에 대한 독자입법 추진이 야당의 힘이 지배적인 환경노동위원회의 터널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노사정 합의의 수준에서 점진적 입법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회의 진지한 노력을 기대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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