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한 동네에 같이 산 이웃 노인들을 상대로 ‘계’를 운영하다 8억원의 곗돈을 가로채 도망간 계주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2013년 계원들이 매달 일정한 돈을 내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목돈을 받는 ‘번호계’ 2개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고모(77ㆍ여)씨 등 20명으로부터 곗돈 8억원을 가로챈 혐의(특경법상 사기)로 김모(59ㆍ여)씨를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곗돈을 받을 순서가 된 계원에게 “급하게 돈을 먼저 타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순위를 뒤로 미루고 이자를 더 받으라”고 꼬드기는 수법으로 돈을 지급하지 않고 자신이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찜질방을 운영한다는 점을 들어 60,70대 이웃 노인들의 신뢰를 얻은 뒤 매달 200만원씩 25개월간 돈을 내면 5,000만원을 목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계를 만들었다.
조사결과 김씨는 가로챈 돈을 찜질방을 운영하면서 생긴 대출 이자와 개인 채무 등을 갚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곗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데도 계모임 날이 되면 빠지지 않고 출석해 계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곗돈 지급일이 미뤄진 것을 수상히 여긴 계원들은 결국 지난 3월 김씨를 고소했다. 김씨는 대포폰까지 사용하며 도피행각을 이어가다 10일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 중에는 요양원에서 간병인으로 어렵게 일하면서도 목돈을 마련하려고 계에 참여한 노인도 있었다”면서 “곗돈 사기는 오랫동안 신뢰를 쌓고 나서 이뤄지는 범죄인 만큼 계에 참여하기 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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