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과징금과 검찰 고발 중징계안
감리위는 과징금 부분만 인정
모든 혐의 인정해 중징계하면
건설업 회계 처리 관행 손질 불가피
금융위원회의 대우건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최종 제재 결정을 두고 두 차례나 논의가 연기되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년 반에 걸친 감리 끝에 분식회계 혐의를 포착하고, 사전심의기구인 감리위원회가 이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했음에도 금융위가 최종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한달 넘게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가 ‘대우건설 분식회계’ 딜레마에 빠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혐의를 그대로 인정하자니 건설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고, 결정을 뒤집거나 징계 수위를 낮출 경우 ‘기업 봐주기’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위가 진퇴양난에 처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9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대우건설에 대한 제재 결정을 재차 연기했다. 지난달 23일에 이어 두 번째다. 증선위가 자문기구 역할을 하는 감리위의 징계 수위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에서 이처럼 논의가 지연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증선위는 오는 23일 정례회의서 다시 제재 수위를 논의할 방침이지만, 이 자리에서도 결론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가 밝힌 논의 지연 이유는 대우건설과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의 소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회의에선 소명을 듣는 절차가 진행됐고, 이번 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증선위원들의 의견 개진 과정이 이어지면서 결론을 내릴 시간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증선위가 참고해야 하는 금감원과 감리위의 심의 결과에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2013년 말 대우건설이 2012년 재무제표에서 1조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은폐했다는 내부 제보를 받고 회계감리에 착수해 지난 6월까지 1년 6개월 간 대우건설 감리를 벌여 11개 사업장의 5,000억원 규모 분식회계에 대해 상당 부분 고의성이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리위는 이 같은 금감원의 판단을 두고 세 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지난달 11일 9개 사업장의 2,500억원 규모에 대해서만 분식회계로 보기로 결정하고 대우건설에 과징금 20억원, 삼일회계법인에 과징금 10억원 규모의 중징계를 의결했다. 특히 9개 사업장 중 6개(2,200억원 규모)의 위반사안에 대해 모두 고의가 아닌 중과실 조치를 내렸다. 분식회계 규모를 절반으로 줄였을 뿐 아니라 대부분 고의가 아닌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분식회계 규모와 고의성 여부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금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상당한 파장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해 중징계를 내리면 당장 건설업체들의 회계처리 방식에 일대 혼란이 생기게 된다. 대우건설이 지적 받은 회계처리 방식의 경우 국내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인데다 이를 문제 삼을 만한 회계기준 또한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2011년 국내에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수주산업은 수익인식 시점에 대한 예외를 인정받았고, 건설사들은 이를 근거로 아파트나 플랜트 공사시 전체 계약원가에서 실제 발생한 비용 만큼을 진행률로 보고 수익으로 인식해왔다. 이런 까닭에 대우건설이 ‘유죄’로 판명날 경우 건설사들은 당장 대손충당금을 대폭 늘려야 하는 등의 회계처리 방식의 변경이 불가피해진다. 이번 사안의 경우 해외 플랜트가 아닌 아파트 사업에서 발생한 문제란 점에서 국내 건설사 대부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대우건설 회계가 잘못이라면 당장 대부분 건설사들이 재무제표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이를 의식해 지난달 급히 회계업계, 학계 등 전문가를 망라한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결성하고 22일에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뒤늦게나마 건설사들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감리위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추가로 징계 수위를 낮추는 경우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따르는 상황이다. 당장 감리위가 대우건설의 CEO와 임직원, 회계법인의 해당 회계사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안을 수용하지 않고 과징금 처분만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기업 봐주기’라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열린 금융위 국감에서도 “대우건설이 수천억원 분식회계를 했는데 과징금이 20억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조선 등 수주 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과징금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징계 수위가 더 낮아질 경우 자칫 ‘감독기관간 마찰’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도 금융위에겐 부담이다. 금융감독원의 1년 반 가까이 감리한 내용을 금융위가 모두 부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단일 회사의 특정 기간의 회계처리를 둘러싸고 금융당국이 2년 가까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번 사건의 민감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건설사들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동시 특수성을 반영하는 식의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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