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문화가 몸에 밴 한국인들은 등산마저 여유를 즐길 새 없이 빠르게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이른바 ‘경쟁 산행’을 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한국인들이 정작 주말 여가 시간을 경쟁적인 산행에 쏟는다며, 한국 특유의 ‘정상 중심주의(Peak-centricism)’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등산객들은 산세나 계곡 등 주위 절경을 둘러보며 여유를 찾는 대신,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줄지어 정상에 올랐다가 금세 하산하는 데서 성취감을 얻는다는 분석이다.
이 신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2012년 국립공원 방문객 수는 2004년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의 등산 선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하지만 산에서 진정한 휴식을 얻기는 더욱 힘들어지는 실정이다”고 전했다. 북한산을 오르던 등산객 김미라(48)씨는 “매주 빠지지 않고 산행을 하지만 올 때마다 등산객이 (산이)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면서 “주말을 맞아 산에서 혼자 조용히 생각에 빠지고 싶어도 주위 등산객들 탓에 힘들다”고 WSJ에 말했다.
한국 정부가 등산 문화 개선을 위해 1,000만달러를 들여 ‘느린 산행’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성과가 나올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란 전망도 했다. WSJ은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를 극복하려면 1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른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를 인용한 뒤 “경쟁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등산할 때도 경쟁적 자세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데, 이는 모든 가치를 ‘정상(Peak)’ 정복에 두는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백두대간 홍보대사를 역임한 미국인 데이비드 메이슨 중앙대 교수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산은 한국인들의 정체성에 매우 깊게 파고들어 있다”면서도 “그러나 ‘가능한 한 빨리 정상에 도착한 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는 한국 친구들의 등산 태도 탓에 이들과 동행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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