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지난달 27일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한 뒤 다섯 차례에 걸쳐 대표자회의에 참석했지만 좀처럼 노동계를 만족시킬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4개월 이상 노사정테이블을 떠나있다 복귀한 터라 ‘재결렬’을 선언하기 쉽지 않아, 협상시 불리한 구도인데다 여론마저 노동계보다는 정부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노사정협상의 최대 쟁점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기준 완화와 일반해고 지침 마련과 관련, 지난 10일 노동계가 제시한 안은 별도의 제도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자는 안이었다. 애초 노사정위에 복귀하면서“두 사안을 절대 다룰 수 없다”는 노동계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패를 공개한 셈이지만, 정부가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버티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부가 강수를 두고, 경영계는 정부 의견을 따르겠다며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지만 노동계가 대화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난달 내부 진통을 거쳐 위험을 무릅쓰고 노사정 복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도부는 쟁점 사안에서 다소 양보하더라도 통상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다른 현안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계 입장에서도 산적해 있는 현장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결국 노사정 협상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좀처럼 양보하지 않고 있어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노동시장개혁 논의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이라는 두 가지 사안에만 집중돼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업종 확대 등 다른 이슈들이 상대적으로 묻혀버리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노동시장개혁은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시장 2중 구조 해소를 목표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주로 대기업, 공기업 노동자들의 관심사안인 ‘임금피크제’의 도입여부만 부각됐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사정 대화의 의제들은‘남의 문제’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노사정이 다룬 의제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언급이 없었던 과제들로,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과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의 조직력이 예전같지 않은 점도 노동계가 협상에서 끌려간 이유다. 한국노총은 올해 7월 정부의 노동개혁 개악에 맞서 18년만의 총파업을 결의했고 민주노총도 11월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지만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997년 총파업 이후 잦은 파업으로 정부와 국민들은 파업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이번 파업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최근 현대중공업과 금호타이어 등 상대적으로 근로여건과 임금수준이 높은 대기업 노조의 파업에 이어, 비록 개별기업의 문제라 해도 직원 평균 9,7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임금인상 뿐 아니라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파업을 결의한 점도 노동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한국노총이 협상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의 ‘청년 고용 프레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정부는 아젠다마다‘청년’ 하나만 갖다 붙이고 있다”며 “명분과 설득력이 없지만, 한국노총이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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