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다 해본 불안장애 환자의 결론, 적당히 불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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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다 해본 불안장애 환자의 결론, 적당히 불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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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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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시달려온 저자

왜 불안할까, 어떻게 해야 나을까

불안의 뿌리 집요하게 파헤쳤지만…

원인도 치료법도 정답 없음

"불안과 함께 살아가야" 고백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 반비 발행·496쪽·2만2,000원

미국 프로농구팀 보스턴 셀틱스 소속의 빌 러셀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의 농구선수다. NBA 올스타로 열두 번이나 선발되고 다섯 번이나 MVP로 뽑혔으며 전국 대학 대항전 우승, 올림픽 금메달, 프로대회 우승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큰 경기를 앞두고 반드시 구토를 해야 경기가 잘 풀리는 희한한 징크스가 있었다는 건 농구 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56~1969년 사이 무려 1,128개 경기에서 구토를 했다. 한번은 러셀이 구토를 하지 않자 감독이 그가 토할 때까지 시합 전 워밍업을 미루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안과 불안장애는 오늘날 현대인이 앓는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다. 2006년 ‘미국 정신의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년 동안 미국인들이 불안과 우울증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을 전부 합하면 3억2,100만일이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500조달러에 달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지난 5년 간 불안장애로 진료 받은 환자의 수가 22.8%나 늘었다는 조사가 있다.

그러나 불안이란 단어가 병원의 공식진단에 포함된 것은 불과 35년밖에 되지 않았다. 1948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정신신경증이라 명명한 이 증상은, 1968년 정신의학의 경전인 DSM 2판에서 신경증으로 개명되고 1980년 DSM 세 번째 개정판이 나오면서 불안장애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용어의 변화에 따라 불안의 원인, 증상, 문화적 의미, 치료법, 사회적 인식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무엇보다 불안이 약물로 치료가 가능한 의학적 질병인지, 아니면 과거의 기억을 다시 들춰내야 하는 정신분석의 문제인지에 대해선 예나 지금이나 정답이 없긴 마찬가지다.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억압된 무의식을 끌어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인지행동주의자들은 뾰족한 모서리나 높은 위치에 환자를 노출시켜 불안을 극복시키려고 한다. 생의학으로 가면 불안은 추억이나 상처에서 뇌와 호르몬의 문제로 바뀐다. 대체 불안은 왜 생기며,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스콧 스토셀이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나섰다. 30년 넘게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저자는 개인적 질환에 천착해 책을 쓴다는 부끄러움을 떨치고 다음과 같은 말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의식, 자아, 정체성, 지성, 상상력, 창의성뿐만 아니라 고통, 괴로움, 희망, 후회까지도. 어떻게 보면 불안을 파악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실업 위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불안은 일상의 동반자다. 30년 동안 불안장애에 시달려온 미국의 저널리스트 스콧 스토셀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안의 역사를 되짚으며 불안을 버티고 그와 공생하는 법에 대해 살핀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불안증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구토에 대한 공포만 놓고 얘기해도, 위장약을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비행기에서 훔친 구토용 봉지를 집과 사무실, 차 안 곳곳에 비치해놓으며, 인터넷으로 노로바이러스나 장염 바이러스처럼 구토를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어느 지역에서 발병해 어디 쯤에서 감소세로 접어들었는지를 파악해 달달 외우고 다닐 정도다. 그가 지난 30년 넘게 한 번도 구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 위안도 되지 못한다.

이 밖에 수많은 불안과 강박 증상에 시달려온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안의 근원을 규명하는 데 소용된 인류 지식의 방대한 역사 속으로 뛰어든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한 ‘검은 담즙’에서 출발, 키르케고르와 플라톤의 철학적 견해를 지나 찰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의 무의식론을 거쳐 현대 신경과학과 유전학의 최전선에 도달한 저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족력과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손을 뻗쳐 불안의 뿌리를 집요하게 더듬는다.

‘지적인 환자’가 안내하는 불안의 세계는, 불안 장애가 있는 이들에겐 더할 수 없는 위로를, 이 증상을 모르는 이들에겐 생생한 간접 경험을 선사한다. 수십 년에 걸쳐 불안 치료의 최신 트렌드를 모조리 섭렵한 저자는 학자들처럼 특정 견해의 우월함을 고집하지도 않고 치료 과정에서 느낀 절망과 혼돈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신의 돌봄 안에서 안전한가, 아니면 차갑고 냉혹하고 무심한 우주 안에서 죽음을 향해 무의미하게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훨씬 세속적으로, 시냅스 안의 세로토닌 수치를 적절히 조절하면 평온을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이 둘은 어쨌든 결국 같은 것일까?”

불안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예상대로 실패하지만, 저자는 집필 자체가 상당한 치유의 경험이 됐음을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불안의 뿌리를 ‘강박적으로’ 캐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불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불안을 피할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불안 조절은 불안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줄이고 이 정상적 불안을 자각, 조심성, 삶에 대한 열정을 높이는 자극으로 쓰는 것이다.” (롤로 메이, ‘불안의 의미’)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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