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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칠레의 이 날은, 아옌데가 숨지고 피노체트의 17년 군사독재 서막

입력
2015.09.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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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민선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칠레 민선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9ㆍ11은 2001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날이다. 이날 오전 아메리칸항공 11편 등 민간항공기 네 대를 납치한 테러리스트 19명은 뉴욕 쌍둥이빌딩과 알링턴 펜타곤 등에 고의 충돌하는 연쇄 자살테러를 감행했다. 2977명(테러범 19명 제외)이 숨지고 6,000여 명이 부상 당했다. 9ㆍ11 테러는 부시의 재선과 이라크 전쟁 등 21세기 첫 10년의 세계 정치와 미국의 군사ㆍ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강력한 자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칠레 시민들에게 9ㆍ11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가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자 민선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ㆍ사진)가 숨진 날이고, 살해와 납치 고문으로 점철된 암흑의 17년 군사독재가 시작된 날이다. 그 기억의 바닥에는 쿠데타의 배후로 밝혀진 미국 닉슨 행정부와 중앙정보국(CIA)에 대한 분노도 깔려 있을 것이다.

소아과 의사 출신 정치인 아옌데는 70년 대선에서 사회주의 정당 연합인 인민연합 후보로 출마, 36.2%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3위였던 기독민주당 후보(27.8%)가 아옌데를 지지함으로써 그는 선거로 집권한 라틴아메리카의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됐다. 그의 집권기는 혼란스러웠다. 대토지 국유화와 외국자본이 운영하던 구리 광산 등 대자본 국유화, 빈민아동 우유 무료급식과 공공근로 등 빈곤층 생계ㆍ복지정책, 쿠바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와의 잇단 국교 수교 등 급진적 좌파 정책들은 서방 강국들을 자극했고, 국내적으로는 전통 기득권층의 반감을 샀다. 아옌데 정권에 대한 미 국무부(당시 키신저)의 경제ㆍ외교적 고립화정책도 집요했다. 경제는 침체했고 물가는 급등했다. 파업 등 노동분규도 잇따랐다.

73년 9월 11일 수도경비사령관이던 피노체트의 쿠데타에는 칠레 군 고위 지휘관 대다수가 가담했다. 전투헬기까지 동원한 쿠데타군에 맞서 소수 경호부대와 함께 직접 총을 들고 산티아고 모네다궁(대통령궁)을 사수하던 아옌데는 AK-47 소총으로 자살하기 직전, 라디오 방송으로 국민에게 고별 인사를 전한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91년 피노체트가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3,000여 명이 살해됐고, 1,000여 명이 실종됐다. 유족 상당수는 아직도 가족의 시신을 찾아 헤매고 있다. 98년 공개된 미 CIA 기밀문서들은 아옌데 정권 초기부터 쿠데타까지 수많은 공작을 주도하며 피노체트 군에게 무기 등을 지원한 사실을 담고 있었다. 피노체트는 2006년 자연사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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