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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노동개혁의 나머지 절반

입력
2015.09.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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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가 가장 밀고 있는 과제는 단연 노동개혁이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노동개혁을 1순위에 올린 뒤, 총리와 장관들은 노동개혁 당위성 설파에 여념 없고, 경제부총리는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까지 노동개혁을 논했다. 이렇게나 중요한 걸 왜 집권 후반기가 되어서야 하자고 하는지, 과거 정부는 왜 ‘노동개혁에 미래가 달렸다’는 생각을 못했나 싶은 의문도 든다.

노동개혁은 말 그대로 보면 노동현장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제도와 관행을 뜯어고치는 일이다. 정부가 자주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 분야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작업’ 쯤 되겠다. 그런데 정부 발표나 노사정위원회 논의 내용으로 보자면, 지금 노동개혁 핵심 과제는 임금피크제, 일반해고(경영상 해고가 아닌 근로자 일신상 사유에 의한 해고), 취업규칙 변경 완화 등이다. 비정규직이나 원청ㆍ하청 문제 등도 있지만 정부가 보는 핵심은 아니다. 직장인이 보자면 “이게 다인가?” 싶겠다.

근로현장에는 이것 말고도 부조리와 비정상이 많다. 직장인 설문마다 불만 1ㆍ2위를 다투는 무분별한 초과근무는 불합리한 직장문화의 대표격이다. 최근 한 취업포털 조사에서 직장인 52%가 야근을 자주 한다 했고, 절반이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했다. 한국 근로자 연평균 근로시간(2,071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라는 통계도 여기에 부합한다. 평균이 1,671시간이니, 하루 8시간 근무로 잡고 OECD 평균보다 1년에 50일을 더 일한다.

회식에 발 묶이거나, 집까지 회사일을 싸 가거나, 퇴근 후 상사 전화를 받는 일은 흔하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거나 심지어 일하다 임종을 못 지켰다는 무용담이 여전히 먹히는 데가 한국의 직장이다. 연차를 다 쓰거나 육아휴직을 가면 승진에 관심 없거나 곧 회사 나갈 사람 취급을 받는다. 야근과 술자리에 찌들어 녹초가 된 아빠, 육아와 가사에 짓눌려 탈진 직전인 워킹맘이 도심의 야경을 밝힌다. 휴식을 반납하면 헌신적, 휴식을 챙기면 이기적이란 말을 듣게 되는 문화는 구조적 문제다.

정당한 대가를 받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휴일근무나 야근은 삶의 일부를 떼어 놓길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임에도, 그 노고를 무시하기 일쑤다. 소방공무원마저 2,000억원에 가까운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기사가 최근 났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이 현실이 바로 정부가 간과한, 어쩌면 외면하는 노동개혁 대상의 나머지 절반이다. 당장 내가 바로 거대한 모순 속에 사는데, 임금피크제로 일자리를 만든다거나 노동유연성을 올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얘기는 참으로 멀다.

누구는 경제가 위기인데 한가한 소릴 한다고, 삶의 질을 논할 할 때가 아니라 파이를 더 키울 시점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보다 길을 앞서간 나라들을 보면 앞으로 경제는 위기 아닌 때가 없을 게 분명하다. 이대로라면 나라가 1인당 소득 5만불이 되어도, 일에 중독된 국민은 여전히 행복하지 못할 거다.

직장 내 자율적 영역이라며 정부가 뒷전에 밀어놓을 문제도 아니다. 그렇게 치면 퇴직 직전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연공주의 또한 한국 특유의 직장 문화 아닌가.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는 추진력이라면 못할 게 없어 보인다.

어떤 개혁이든 그 최종 목표는 ‘사람’이어야 한다. 노동개혁을 말하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동현장’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그게 빠진 노동개혁이라면, 좀처럼 대중의 공감을 얻긴 어려울 것 같다. 만약 노동개혁이 지금처럼 간다면? 야근ㆍ특근 관행은 그대로고, 성과가 낮으면 언제 잘릴지 모르고(일반해고), 회사가 자의적으로 룰을 바꿔도 어쩔 수 없으며(취업규칙 변경), 자녀가 대학에 갈쯤 오히려 월급이 깎이는(임금피크제) 직장생활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인생 참 팍팍하지 않은가.

경제부 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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