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고리 1호기 첫 상업운전…국내 발전설비용량 31%나 차지
3·4호기 건설 중, 5·6호기 예정 인접 지역까지 최대 1기 '번성'
1호기 경제성 떨어져 폐로 결정…원전 안전한 해체 '미지의 길' 들어서
‘고리는 옛날에는 ‘아이포(阿爾浦)’로 불렸다. 작은 포구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작다는 말을 아이(小兒)로 표현했다. 이후 몇 번의 지명변경을 거쳐 마을의 상징인 골짜기를 따 현재의 고리(골짜기의 옛말)가 됐다.’(부산 기장군 ‘장안읍지’ 중에서)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는 예부터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 북쪽에 위치한 봉화산(해발 129m)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바다를 접하고 있다. 평범한 어촌이던 고리는 1970년대에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 원전 1호기가 들어서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전이 들어서며 인접 주민들은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나 부산 기장군 일광면 동백리로 이주했다고 한다.
돌아보면 고리의 역사는 원전과 괘를 같이 한다. 한마디로 원전의 태동과 집중, 폐로 전(全)주기를 포함한다.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원전 1호기를 비롯해 단계적으로 가동된 원전은 현재까지 6기. 인접한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와 건설예정인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포함하면 국내 최대 원전타운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고리 원전의 태동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직후인 1960년대 국내는 전력 기근이라고 할 정도로 전력난이 심했다. 대체 에너지원 개발이 시급했고 검토 결과 미래 에너지원인 원자력이 가장 유망하다는 결론이 났다. 시간당 원자력 발전단가는 1원79전으로 화력보다 최소 3.8%, 최고 14.8%나 저렴한 수준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원자력원, 상공부 등으로 구성된 실무자들이 회의를 열고 조사단을 꾸렸다.
조사단은 1964년부터 후보지 선정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22개 후보지를 골라 이듬해 경남 동래군 장안면 길천리ㆍ고리와 기장면 공수리, 경기 고양군 행주외리 등 최종 후보지를 3곳으로 압축했다. 이들은 냉각수, 지질, 기상, 인구 등을 고려해 1969년 고리를 국내 최초 원전 부지로 선정했다.
국내 원전 1호인 고리 1호기는 1977년 원전연료를 장전하고 핵분열을 일으키는 임계점 도달을 위해 운전을 시작, 1977년 6월 3만7,000㎾ 출력으로 가동됐다. 고리 1호기 설비용량은 58만㎾. 1969년 계약협상 당시 국내 총 발전설비용량이 184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리 1호기 한 곳이 국내 전체 발전설비용량의 약 31%를 차지할 정도였다. 건설비용도 경부고속도로의 건설비인 429억원의 3배가 넘는 1,560억원이 투입됐다.
고리는 점차 원전시설로 채워졌다. 고리 1호기가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 효율성을 검증 받자 일대에 원전 5기가 추가로 들어섰다. 현재 가동 중인 가압경수로형 원전은 총 6기로 고리 1호기를 포함, 고리 2호기(1983년) 고리 3호기(1985년) 고리 4호기(1986년) 신고리 1호기(2011년) 신고리 2호기(2012년) 등이다. 이밖에 인접한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 건설 중인 신고리 3호기와 4호기, 설치계획을 갖고 있는 신고리 5~6호기 등을 포함해 최대 10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덕분에 고리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원자력 발전단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부지는 180만㎡에 이르고 지역적으로는 부산 해운대 북동쪽 약 21㎞, 울산 남쪽 25㎞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반면 같은 이유로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원전 신규 건설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증폭된 원전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최근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면서 시민단체가 반발하기도 했다. 정부가 신고리 7ㆍ8호기 건설을 유보하겠다고 했지만 5ㆍ6호기 건설 입장은 고수했기 때문이다.
최수영 반핵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원전 의존이나 확장 정책이 아닌 수요관리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리원전에 인접한 길천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집단 이주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고리가 원자력 찬반의 각축장이 된지도 오래다. 원전 유치로 인한 지역상생 논리와 안전사고로 인한 환경재앙 우려라는 양측의 대결이 고리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고리원전 가동 이후 지난해까지 지역사회 지원실적은 총 7,042억원 상당으로 나타났다. 지역 경제발전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경제효과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다고 해서 원전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지는 않는다.
다만 고리 1호기 폐로 결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한수원은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면서 2017년 고리 1호기 가동 정지를 결정했다. 주기적 안전성 평가, 주요기기 수명평가,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등 전반적인 안전성은 확보했지만 운전심사기간 장기화로 인한 가동률 저하, 지역 지원금 증액 등으로 경제성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국내 에너지 사업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제 고리는 안전한 원전 해체라는 기로에 섰다. 특히 그 동안 우리나라 원전의 큰 흐름은 ‘많이’, ‘크게’ 건설하는 확장 일변도였다는 점에서 고리 1호기 해체 결정은 그 흐름을 전환하는 첫 단추가 될 전망이다.
건설ㆍ운영 중심에서 해체를 포함한 전(全)주기적 원전사업으로 영역 확장도 가능해졌다.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영구정지를 위한 행정적 절차와 해체를 위한 기술ㆍ조직ㆍ인력 확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체기술 육성에 대한 지자체들의 열망도 크다. 부산시는 영구정지 원전을 가진 도시에서 해체 기술 산업을 육성하자며 울산시와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건설을 논의 중이다.
한수원 역시 2012년부터 원전 해체 기본전략과 기술개발 로드맵을 수립ㆍ시행하고 있다.
부산=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