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금광1동 복지회관 프로젝트
"어르신들 삶의 지혜와 경험 공동체 자산으로 남기는 작업"
연말쯤엔 책으로도 출간
“불쌍하고 애통하지만 어떡하겠어. 천국에서 편히 살기를 기도해야지….”
9일 오전 경기 성남시 금광1동 복지회관 지하 1층. 대학생 2명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서병규(92) 할아버지의 눈가가 갑자기 촉촉해졌다.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지난 삶을 담담히 회상하던 서 할아버지가 먼저 간 아들 셋을 떠올린 것이다. 연탄가스를 마셔 갑자기 떠난 아들, 경기를 일으키며 죽어가는 데도 돈이 없어 지켜만 봐야 했던 아들, 과로 때문에 중풍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한 아들까지. 2010년 아내마저 잃고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그는 “다들 고생시켜서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젊은이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은 것은 지난 7월 금광1동 복지회관의 제안을 받고서다. 복지회관은 홀몸노인 등의 소외감을 해소하고 이들의 삶이 전해주는 가르침을 후세에게 전달하기 위해 ‘1*3세대 통합 자서전 만들기-지혜를 담다’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홍나미(46ㆍ여) 복지회관장은 “어르신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와 추억, 기억을 지역 공동체의 자산으로 남겨놓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의 계획은 한국마사회가 출판비 등 500만원을 후원하기로 하면서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홍 관장이 교수로 재직 중인 수원과학대학 사회복지과 학생 10명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손주처럼 오롯이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학생들은 귀로 들은 어르신들의 삶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에는 서 할아버지 외에도 9명의 어르신이 더 참여하고 있다. 일제시대 ‘보국대’로 징용된 아버지를 따라 11살 때 만주로 갔다가 50여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정표(81) 할머니도 그 중 한 분이다. 홍 할머니는 아버지가 만든 새끼줄을 잡고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구술해 대학생들을 울렸다.
유홍염(79)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피난 생활, 남편을 먼저 보낸 뒤 5남매를 홀로 키운 사연 등을 전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 듣는 이들에게 용기를 줬다. 스스로에게 붙인 애칭이‘국화’라는 유 할머니는 “잎의 색깔마다 꽃말이 성실, 사랑, 감사 등으로 다른 국화처럼 남은 여생도 진실되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 할머니 등의 이야기는 12월쯤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 복지관은 책이 출판되면 성남시청에서 기념회도 열 예정이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글쓰기 전문강사 김연주(27ㆍ여)씨는 “어르신들에게는 어떠한 삶도 실패한 삶은 아니라는 자존감을 주고 학생들에게는 이들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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