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한계 모두 드러낸 한중 정상회담
‘평화통일’은 순진하고 표피적 발상
먼저 차이나 패러독스 해소 힘 쏟아야
8월4일 북한 목함지뢰 도발부터 10월2일 한중 정상회담에 이은 중국 전승절 열병식까지 2개월 남짓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는 그야말로 시끌벅적했다. 혼란스러웠다는 말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남북 간 준전시상태의 긴장국면까지 치달았다가 돌연 고위급 접촉으로 대화분위기가 조성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과감한 열병식 참관으로 동북아 이해당사국들 사이에 묘한 갈등기류와 함께 한편에서는 ‘신외교 독트린’이니 ‘한국외교의 독립’이니 하는 말의 성찬도 쏟아졌다.
위기상황에서의 극적인 국면전환 성과는 분명 평가할 만한 것이다. 다만, 이 아슬아슬하고 변화무쌍한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가 과연 장기적이고 폭 넓은 안목으로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당장의 성과에 대한 지나친 자찬(自讚)은 자칫 큰 전략적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도 있다.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북한 도발에 대한 경고의 무게가 가볍지 않고, ‘의미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도 비록 추상적이긴 하나 북핵 대화의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도 한국의 외교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 전체 교역의 4분의 1이 넘는 최대 경제파트너인 중국과의 친밀감 제고 등 계량화할 수 없는 이득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미동맹으로 충족될 수 없는 가치의 존재에 새삼 눈을 떴다고 할까.
하지만 실착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귀국길에 “북핵문제를 포함한 복잡한 문제의 귀결점은 평화통일”이라며 ‘통일 일괄해법안’을 제시했다. 게다가 “조속한 시일 내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나갈 건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해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흡수통일의 냄새까지 풍겼다. ‘섣부르고 경솔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나올 법 했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을 빼고도 중국과 ‘거래’해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중국을 신뢰할 만한 이웃이라고 생각한 걸까?
박 대통령이 꺼내서 유명해진 화두가 ‘아시아 패러독스’다. 한국 중국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밀접해지는데, 외교ㆍ안보적으로는 그에 반비례해 긴장이 높아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가 아시아 패러독스를 걱정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과거사 왜곡이나 군사팽창을 꾀하는 일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변신하는데 그렇게 목을 메는 것일까.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신무기를 대거 선보였다. 84%가 이전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뽐낸 열병식을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20세기 흉물스런 유산” “시진핑 정권의 호전적인 패권주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중국의 부상을 탐탁잖게 생각하는 미국 언론이 내린 평가니 반쯤 접고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 정상을 대거 초청해 그것도 종전 70주년을 맞아 평화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자리에서 첨단무기를 자랑하는 시대착오적인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실로 난감하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무기로 정치ㆍ외교적으로 주변국을 윽박지르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시아 패러독스가 역설의 강도를 높여가는 중요한 원인이 ‘차이나 패러독스’ 때문이다. 이번 열병식은 차이나 패러독스가 동아시아 안보지형을 더욱 공고히 지배할 것임을 알리는 선포식이었다고 할 만 하다. 일본이 역사를 바꾸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데는 차이나 패러독스의 위협을 느낀 때문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열병식 시점에 맞춰 “태평양전쟁의 종전은 미일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미일관계를 “화해의 힘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추켜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리와 상식, 보편 타당한 원칙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중관계는 건강해지고 의미도 가질 수 있다. 중국을 매개로 한 통일외교도 그런 토대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차이나 패러독스를 어떻게 해소할 지를 고민하는 것이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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