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대만 16팀 도쿄 대회 출전… 낯선 문화권서 이색 도전 돋보여
전통 차·콩가루·고추 등 얹어 유쾌한 퓨전의 맛과 여운 살려
이틀간 미식가 3만여명 찾아 젤라토 5톤 시식 흥행 신기록
6일 오전 일본 도쿄 코마자와 공원. ‘2015 젤라토 월드 투어’가 열리고 있는 이곳에 이른 아침부터 동아시아 최고의 젤라토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서 있다. 전날 개막 한 시간 전부터 수백 명이 몰려들어 곳곳에서 젤라토 품절사태를 빚은 이 대회에 주말 이틀 동안 약 3만명이 넘는 인파가 찾아온 것으로 추산된다. 5,000㎏이 넘는 총 7,200여개의 젤라토가 제공된 이번 도쿄 대회는 대회가 시작된 이래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며 일본인들의 뜨거운 젤라토 사랑을 입증했다. 최고의 젤라토 한 덩어리를 맛보기 위해 끝도 없이 이어진 긴 줄의 끄트머리에 가 서는 결의라니…. ‘여기가 이 줄의 마지막입니다’라고 씌어진 비닐 코팅지를 앞사람에게 받은 후 ‘이걸 다시 돌려주고 빠져야 하나, 참고 기다려야 하나’를 한참이나 고민해야 하는, 젤라토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 거주민으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종의 ‘사태’였다.
“세계 최고의 젤라토 장인을 찾아라”
이탈리아 볼로냐 부근 소도시 안졸라 델레밀리아에 자리한 카르피지아니젤라토대학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젤라토 기계 제조사인 카르피지아니사가 2003년 세운 젤라토 셰프 양성 학교다. 젤라토 월드 투어는 이 학교가 세계 최고의 젤라토 장인을 뽑기 위해 개최하는 전 세계적 이벤트로, 이제는 보편화한 미식국가 이탈리아의 첫 세계 순회 경연대회다. 도쿄에 앞서 로마, 발렌시아, 멜버른, 두바이, 오스틴, 베를린, 리미니, 싱가포르 등 8개 도시에서 열렸고, 도쿄 대회는 동아시아 지역 예선전의 성격을 띠는 9차전이다. 본선 파이널리스트 16개팀이 대회 장소에 부스를 차리면 대중이 그 중 6개팀의 젤라토를 골라 무료 시식한 후 점수를 매긴다. 이 대중 평가 점수가 60%, 전문 심사위원 평가가 35%, 본선 진출자 상호평가가 5% 반영돼 각 지역대회마다 톱3의 젤라토 셰프가 뽑힌다. 이들이 모여 최고 승자를 가리는 그랜드 파이널 대회는 2017년 이탈리아 리미니에서 치른다.
도쿄 대회는 본선에 진출한 총 16개팀 중 13개팀이 일본팀일 정도로 일본이 강세를 보였다. 대만이 두 팀, 한국은 한 팀뿐이라 불공정한 대회라는 인상을 받게 되지만, 각국에 퍼진 젤라토 문화의 차이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젤라토 문화의 발달 척도는 주로 젤라토 숍의 숫자로 파악한다. 이탈리아가 종주국답게 가장 많은 3만7,000개의 젤라토 숍을 갖고 있으며, 독일이 9,000개, 스페인이 2,000개로 뒤를 잇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500개 이상으로 최다이며, 호주가 200개로 2위다. 카르피지아니의 세일즈 디렉터인 엔리코 아메소는 “한국은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50개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아직 젤라토 문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시장이라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맛의 구조와 질감이 관건
동아시아 최고의 젤라토를 뽑는 이번 대회는 젤라토가 낯선 문화권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혁신적인 도전이 돋보인 대회였다. 전문가 심사는 젤라토를 담아 내놓았을 때의 시각적 효과를 평가하는 프레젠테이션과 질감, 맛과 향 등을 주요 심사 항목으로 삼았다. 자연스럽게 동양의 식재료가 빚어내는 맛과 향이 젤라토와 어떤 화학작용을 이뤄낼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초콜릿 젤라토와 매운 고추를 결합시킨 일본팀의 ‘숲의 콘서트’가 그 극단적인 형태. 올리브유와 젤라토, 럼주와 젤라토처럼, 젤라토와는 언뜻 결부될 것 같지 않은 재료들도 대거 사용됐다. 실험을 위한 실험의 맛도 있었던 반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하는 맛도 있었다. 유일한 한국인 본선 진출자인 대구의 박성덕 셰프가 선보인 ‘치즈케이크의 콩’은 덩어리의 식감이 살아있는 청키 치즈케이크를 젤라토 속에 넣은 후 젤라토 위에 콩가루를 뿌렸다. 상큼한 치즈케이크와 고소한 미숫가루의 대조적인 맛이 잘 조화된 젤라토였다.
카르피지아니젤라토대의 선임강사 루치아노 페라리는 “중요한 것은 맛의 구조”라고 강조했다. “여러 가지 맛을 뒤섞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맛이 발현되는 시차와 그 맛들이 빚어내는 조화다. 단맛과 짠맛과 산미가 각각 어느 시점에 미각을 자극하고, 그 자극들이 어떻게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지가 젤라토의 맛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빙수와 젤라토의 행복한 만남’이 1등
1등상은 일본 요코하마의 젤라토 셰프인 아키라 하토리가 만든 ‘섬머 페스티벌’이 수상했다. 빙수를 응용한 이 젤라토는 4개의 층으로 맛을 구축했다. 딸기 젤라토 위에 우유 젤라토를 올리고, 그 위에 빙수의 아삭한 질감이 살아있는 딸기 그라니타를 얹은 후 마지막으로 장미소스를 끼얹었다. 너무 평범한 맛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질리지 않는 오리지널의 맛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등상은 대만의 유 리와 앰버 리 셰프가 팀을 이뤄 만든 ‘차의 달콤한 인생(라 돌체 비타 디 테)’에 돌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만 알리샨 지역의 허니블랙티를 베이스로 해 열대과일 리치에서 추출한 꿀과 핑퉁 지역의 흑미 뻥튀기를 가니시로 얹은 젤라토다. 가벼운 우유향이 향기로운 블랙티, 보다 무거운 맛의 리치 캐러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입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과자 뻥튀기는 풍부한 질감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마디로 아시아와 이탈리아의 유쾌한 퓨전을 이뤄냈다는 것. 차의 은근한 맛이 여운을 길게 남기는 고급스러운 젤라토였다.
3등은 레몬, 치즈, 헤이즐넛의 세 가지 젤라토를 결합한 후 상큼한 레몬 토핑을 가니시로 올린 일본 나가사키의 젤라토 셰프 요시후미 아리타가 선보인 ‘아말피의 추억’이 차지했다. 레몬과 함께 토핑으로 올라간 가나슈 초콜릿과 헤이즐넛 캐러멜이 각각의 젤라토가 내는 맛의 개성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잡아주는 덕분에 보기에도 좋고 맛도 우아한 젤라토가 탄생했다.
부대행사로 열린 이색 경연대회도 흥미진진했다. ‘금 스패출러’가 상품으로 주어진 ‘젤라토 정확히 담기’ 부문에서는 한국의 박성덕 셰프가 우승했다. 컵에 젤라토와 가니시를 담은 후 저울에 달아 60그램에 가장 근접한 셰프가 승자가 되는 이 부문에서 박 셰프는 63그램을 기록했다. 기술보다는 운에 더 좌우될 것 같아 보이는 이 부문은 그러나 젤라토 셰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고. 엔리코 아메소 카르피지아니 세일즈 디렉터는 “젤라토 셰프에게 정확한 양의 젤라토를 담는 기술은 굉장히 중요하다. 너무 많이 담으면 손해를 보고, 너무 적게 담으면 고객의 신뢰를 잃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콘에 가장 많은 젤라토 덩어리를 쌓아 올리는 콘테스트에서는 대만의 안드레아 보나피니 셰프가 우승했다.
젤라토를 어떻게 세계 각국의 디저트 문화와 결합시킬 것이냐는 이탈리아가 고민하는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최근 세계 미식의 수도 뉴욕에서는 세계적인 셰프들과의 협업으로 각 메뉴마다 젤라토가 가미된 ‘젤라토 디너’를 열기도 했다. 세계를 순회하는 젤라토 월드 투어도 전 세계에 젤라토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다음 대회는 미국 시카고를 시작으로 브라질, 중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로 이어질 예정이다.
도쿄=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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