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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크루즈 선상에서 ‘외국인 전용’ 구역?

입력
2015.09.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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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전쯤 선진항만 취재차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일대를 여행한 경험이 있다. 높은 복지수준에다 깨끗한 정치, 천혜의 자연, 여유로운 삶의 태도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나라들이다.

그 여행길에서 기자는 당시 우리에겐 흔치 않은 풍경 하나를 인상 깊게 살펴볼 수 있었다. 유람선 문화다. 기자가 탄 유람선은 핀란드와 스웨덴을 오가는 1박 2일 일정의 크루즈선 ‘실리아 라인’이었다. 1991년 건조된 이 배는 5만8,400톤 규모로, 13층 높이에 총 985개 선실이 있고 레스토랑과 면세점, 수영장, 나이트클럽, 오락실, 영화관, 카지노 등을 가진 ‘바다 위의 리조트’였다. 배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오후 6시 출항해 다음날 오전 9시30분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모든 승객이 하루 밤을 배에서 보내는 여행이다.

당시 기자에겐 눈이 휘둥그런 호화 유람선이었지만 동행한 가이드는 이 체험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북유럽 유람선 문화를 즐겨보는 알짜 여행코스라고 설명했다.

우선 면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이곳의 술값은 정상 가격의 60% 정도에 불과, 많은 사람들이 바에서 술을 즐겼다. 면세점에서도 단연 술이 최고 인기였다. 1명당 2박스까지 맥주를 살수 있었는데 당시 그들의 세련된 풍모에 좀 멋쩍게 보였지만 면세 술을 사기 위해 시장 볼 때 사용하는 소형 카트를 준비한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승객은 클럽파와 카지노파, 침실을 지키는 수면파, 갑판에서 석양을 즐기는 와인파로 나뉘는데 왕래가 잦아 외국여행의 느낌이 별로 없을 유럽인들은 대부분 클럽파이며, 가끔 한국인 등 동양계가 자국에서 흔치 않는 호기심에 카지노를 들르고, 돈 많은 백인들은 주로 갑판에서 와인을 겸해 석양과 백야를 즐긴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세계일주 상품까지 생긴 요즘 겨우 맛보기에 불과한 기자의 경험을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크루즈 산업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근년 들어 중국의 폭풍 성장은 동북아를 크루즈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게 해 세계 업계가 군침을 흘리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 황금시장을 잡기 위해 국적 크루즈 산업을 키우려는데 내ㆍ외국인이 함께 출입할 수 있는 선상 오픈카지노의 개설 문제가 논란이다.

외견상 ‘사행성을 조장하고 도박중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문체부와 ‘국적 크루즈 선사가 과연 내국인 출입금지의 역차별을 받으면서 외국선사와 경쟁할 수 있을까’하는 해양수산부의 주장이 충돌하는 양상이지만 더 들여다 보면 국내에서 독점권을 가진 강원도(강원랜드)의 이해가 맞닿아 있다. 물론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야를 넓게 보면 논란은 무의미해 보인다. 지난달 29일 부산항에 처녀 입항해 화제를 모은 아시아 최대 크루즈선 ‘콴텀 오브 더 시즈’(정원 6,405명)가 오는 11일 중국 관광객을 잔뜩 싣고 부산항을 다시 찾는다. ‘상하이-부산-나가사키-상하이’ 코스의 이 배는 올해만 부산항에 총 11회 입항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선사가 운영하는 이 배의 운영수익은 승객을 태운 모항 및 경유지항 국가의 이해와 관계없이 그들이 다 빼간다. 그들은 돈만 되면 어디든 진출해 여행코스를 만든다. 세계적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이 국내에선 내국인 카지노를 불허하면서도 크루즈의 이런 특성을 감안, 선상카지노를 허용하고 자국 선사에도 이를 허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인구 5,100만명에 연간 1,600만명 이상이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도 크루즈 관광이 어색하지 않을 날이 머잖아 보인다. 그런데 여러 나라를 경유해야 할 우리 국적선에 ‘Foreigner-only’(외국인 전용), ‘off limits to Koreans’(한국인 출입금지)란 경고판이 걸린 구역이 생긴다면 함께 배를 탄 외국인들은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목상균 부산본부장 sgm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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