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뮤지컬의 공식은 죄다 모았다.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2008) 등을 휩쓴 걸출한 원작을 바탕으로 소속사 아이돌(키, 첸, 제이민, 루나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실력 탄탄한 배우들이 이들 뒤를 받친다. 스타 연출가(이지나) 음악감독(원미솔) 무대디자이너(박동우)가 만났다.
연예기획사 SM엔터텐인먼트 계열사인 SM C&C가 두 번째로 제작한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아이돌 쇼케이스로 끝날 거라는 회의적인 예상을 깼다. 랩과 힙합, 레게, 라틴 팝, 쿠바 리듬에 힙합, 스트리트 댄스를 펼치는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초반부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6일 저녁 공연에서 우스나비를 맡은 양동근의 능청스런 랩은 일품이었다. 극의 배경인 뉴욕의 ‘라틴 할렘’이라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와 그 곳에 사는 인물들의 성격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작품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우스나비, 미용사 바네사, 동네 영재로 꼽혔던 대학생 니나, 니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운수회사에서 근무하는 청년 베니를 중심으로 이민자들의 애환과 꿈, 희망을 펼친다. 아이돌에 최적화된 장르를 모두 모은 넘버만으로 눈과 귀가 즐겁다. 2시간 30분간 쉬지 않고 펼쳐지는 가창 대결, 댄스 퍼레이드가 너무 지나쳐서 관객들을 지치게 한다는 게 단점일 뿐이다.
미국 이민자들의 애환을 예리하게 드러낸 서사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지만 유치하지 않다. 우스나비의 사촌 소니가 ‘나이키 운동화’를 학수고대하다 운동화 사는데 5달러를 보태겠다는 베니의 제안에 첫사랑 니나를 포기하고, 그렇게 산 나이키 운동화가 누전사고로 뜨거운 아스팔트에 달라 붙어버린 장면 같은 것 말이다. “저쪽 동네에서 틀어대는 에어컨의 더운 기운을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맞고 산다”고 푸념하는 이민자 할머니 클라우디아는 어느 날 9만6,000달러 복권에 당첨되지만 곧 죽음을 맞는다.
배우 겸 래퍼 양동근이 랩을 통한 내레이터 역을 겸하는데, 가사와 대사에도 운율을 넣었다. 우스꽝스런 연기로 양념역할을 톡톡히 했던 미용실 주인 다니엘라 역의 최혁주는 후반 폭발적인 가창력까지 선보여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만 ‘스탠포드 대학생’ 니나 역의 김보경은 스트리트 댄스와 랩이 주도하는 무대에서 어색한 표정과 춤으로 일관했는데, 이런 뻣뻣한 자세가 주로 출연했던 고전 뮤지컬과 다르기 때문인지 영재 캐릭터의 우회적인 표현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바탕으로 한 넘버를 우리말로 옮기다 보니 어색한 리듬이나 단어가 툭툭 튀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주요 배역들이 복권 당첨금 9만6,000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할지 번갈아 부르는 넘버 ‘9만6,000달러’는 작품의 백미인데, “9만6,000달러”와 “ninty six thousand” 심지어 우리 값으로 호환한 “1억원”을 번갈아 부른다. 11월 2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02)1588-5212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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