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中 경기·원자재값 3중苦
자금 이탈·경기 부진 가속도 징후
지난달 동남아 5개국 증시 이탈
외국인 자금 전월보다 53% 폭증
신흥국 경제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보음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연내 금리인상 예고, 중국 경기 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의 3중고에 따른 자금 이탈 및 경기 부진 가속화 징후 속에 아시아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신흥국 경제권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 경제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신흥국 경제악화 징후는 러시아, 터키, 남아공, 브라질 등 기존 취약국을 넘어 아시아 및 중남미 신흥국 전반으로 빠르게 번지는 양상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경제는 주요 교역국인 중국의 증시 폭락 및 통화 평가절하의 직격탄을 맞았다. 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위안화 절하로 대중교역 비중이 높은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출 둔화 및 디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시장 불안이 동남아 국가 전반에 주가 및 통화가치 급락을 유발하면서 이 지역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동남아 주요 5개국(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증시에서 이탈한 외국인 자금은 36억6,700만달러(4조3,700억원)로 전달보다 53% 증가했다.
동남아 위기 상황이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 글로벌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부 아시아 신흥국은 급격한 자본유출이나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외환보유액 부족 사태에 직면한 동남아 3개국을 위기 취약국으로 지목했다.
선진 경제의 통화완화 정책에 힘입어 이들 국가의 기업부채 규모가 외환위기 수준으로 불어난 점도 불안요소다. 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중이 외환위기 직전이던 1996년(50%) 수준을 넘어섰다. 송민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2008년 이후 발행된 신흥국 기업들의 회사채 중 20%가량이 외화표시 회사채여서 통화가치 하락 땐 부채상환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이어 동남아까지 경기 부진에 빠져들 경우 우리나라 수출경제가 입는 타격은 배가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대(對) 아세안(ASEANㆍ동남아 10개국) 수출 비중은 14.8%에 달한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외환위기가 이들 3개국에 국한될 경우엔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은 0.5%포인트, 90년대 말 수준의 글로벌 위기로 번질 경우 1.3%포인트가 각각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다른 주요 신흥국 블록인 중남미 경제 역시 악화일로다. 세계은행은 최근 이 지역의 올해 성장률이 작년(1.7%)보다 1.3%포인트나 떨어진 0.3%를 기록, 2009년(-1.6%) 이래 최저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남미는 미국 금리, 중국 경기, 원자재 가격 하락 등 3중고에 더해 물가까지 치솟고 있어 당분간 경기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유가 하락에 따라 원유 수출 비중이 높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이 특히 타격을 받고 있다"며 "물가 상승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효과가 제약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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