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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신외교, 균형자론, 북방외교의 한계

입력
2015.09.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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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임기 중반 외교안보 정책으로 동북아 균형자론을 들고 나왔을 때 미국은 “동맹을 깨자는 것이냐”는 거친 반응을 외교경로로 전달했다. 미국, 한미동맹과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작용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균형자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나오지 않았다. 말과 생각만 앞섰다.

그런 전례로 본다면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 행사 일환으로 열린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상징적이다. 신외교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동맹국은 물론이고 서방정상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국굴기의 군사적 과시로 봤다. 미국 정부는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보조를 맞추지 않은 데 대한 떨떠름함까지 털어내지 못한다. 한국전 당시 노도처럼 압록강을 넘어 유엔군에 기울어진 전세를 일거에 뒤집었던 중공군의 개입, 이후 이어진 분단 60년을 기억하는 우리 내부적으로도 격세지감 혹은 당혹감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중 관계의 정경분리 선이 흐려졌다.

북한의 심경은 오죽할 것인가. 지난 5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러시아의 2차세계대전 전승절에 헌법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사절로 갔다. 중국 전승절 참석자는 서열 4위인 노동당 비서 최룡해다. 중국에 전하는 메시지,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투쟁을 계속하는 동안 보다 돈독해진 혈맹관계”(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무적의 힘이며 양국을 잇는 강산이 마르고 닳지 않는 한 지속될 우호관계”(김일성 전 북한 주석)라며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양국 선대의 수사가 무색해지는 지금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과 중공군 90만명의 피로 이루어진 재조지은(再造之恩ㆍ나라를 구해준 은혜)의 관계도 세월과 국제환경의 변화 앞에 크게 퇴색돼 가고 있다.

지금 정세는 공산권과의 관계개선과 대북 경제개방을 내세웠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당시를 연상케 한다. 경제관계 확대를 고리로 한 한ㆍ소, 한ㆍ중 수교로 북한은 고립무원에 놓였다. 북한도 남북관계 개선을 탈출구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남북간의 가장 중요한 합의로 꼽히는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1991년 12월 13일)도 이 시기에 도출됐다. 내부문제 간섭, 상호비방, 파괴 전복행위 중단, 평화상태 전환 노력과 상호 무력사용 중단은 물론 군비의 대폭 감축까지 담아냈다.

남북협상에서 우리측 입김이 가장 잘 먹혔던 시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아니고, 북방외교 시절이었다. 우리 외교관들의 평가다. 이듬해 2월 핵무기 제조, 생산 금지는 물론 핵 재처리시설 및 우라늄농축시설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남북 핵 합의 조인식 당시 북한의 김영철 소장은 “협정 문안의 90%가 남측 주장에 따라 작성된 것인 만큼 이것은 당신네 협정이지, 우리 협정이 아니다”(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라고 우리측 군부 인사에게 말할 정도였다. 뜻밖의 정세 변화에 북한의 처지는 절박했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 대가는 통일외교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귀국길에 “조속한 시일 내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지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남북한은 물론 주변국 누구라도 이익이 되고 반대하지 않는 여건 조성은 통일 외교의 목표이자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방법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간이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2년 반이다. 미국은 정권교체기이며 핵심당사국인 중국도 몇 년 남지 않았다. 북한의 김정은은 임기가 없다. 돌이켜보면 북방외교 시절 북한의 실제 탈출구는 지속적인 핵 개발이었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 통일외교의 정교한 플랜과 시간을 관통하는 일관성을 여러 곳에서 주문하겠지만 정권마다 뒤집힌 역사가 증명하듯 공허한 얘기다.

정진황 기획취재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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