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0일 오전 7시30분. 평소 아침과 다름 없이 집을 나선 40대 가장은 회사 대신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처남에게 “아이들과 처를 잘 부탁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가장은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LG유플러스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모(당시 45세) 상무의 자살은 외양만 놓고 봐선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LG파워콤에서 근무하던 이 상무는 2010년 회사가 LG텔레콤에 합병된 후 신설된 LG유플러스에 소속되면서 최연소 상무가 됐다. 평균 상무 승진 연령보다 4~5년가량 빨랐다. 하지만 IPTV 사업부장 부임 초기인 2010년과 2011년 목표치를 웃돌던 사업 매출실적이 2012년 경쟁사에 밀리자 사업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피합병 회사 출신이라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피해의식도 있었다. 특히 국내 IPTV 가입자 500만명 달성을 기념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동탄산업훈장을 받게 됐지만, “대표이사에 앞서 상무 직급이 훈장을 받는 것이 불쾌하다. 훈장을 취소하고 싶다”는 회사 부회장의 이야기를 공개 석상에서 듣고 크게 좌절했다. 이후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부하 직원들에게 “공황장애가 있는 것 같다” “사는 것이 재미있느냐” 등의 넋두리도 건넸다. 자살 한 달 전에는 “사표를 내고 싶다”며 아내에게 모아둔 재산이 얼마인지, 한 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등을 물었다.
아내는 “남편이 업무상 이유로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병수)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6일 “망인은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우울증세가 발생, 악화됐다”며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빠지게 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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