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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벽면이 열리며 석양·네온사인도 공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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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벽면이 열리며 석양·네온사인도 공연이 되다

입력
2015.09.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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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亞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작, 대만 감독 차이밍량의 '당나라 승려'

어둠 활용 현장법사 구도 표현… 시범운영 거쳐 11월 공식 개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막작 ‘당나라 승려’에서 현장법사로 분한 대만배우 리캉성(왼쪽)과 대만화가 카오쥔홍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개폐형 벽면이 통째로 열리며 극장 밖 일몰 풍경이 함께 펼쳐졌다. 예술극장 제공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막작 ‘당나라 승려’에서 현장법사로 분한 대만배우 리캉성(왼쪽)과 대만화가 카오쥔홍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개폐형 벽면이 통째로 열리며 극장 밖 일몰 풍경이 함께 펼쳐졌다. 예술극장 제공

지난 4일 오후 7시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1,372㎡(약 415평)의 대극장은 넓다 못해 황량한 느낌을 준다. 극장 1. 1,120개 객석을 치워버린 뒤였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한 바닥과 ㄱ자 모양으로 놓은 간이객석 한 가운데, ‘무대라고 친’ 가로 세로 8×4m의 흰 종이 위에 민머리의 남자가 붉은 옷을 입고 누워있다. 조명은 한낮의 햇빛처럼 그를 비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듯이 잠을 잔다.

예술극장 개관을 맞아 선보인 대만 영화감독 차이밍량의 연극 ‘당나라 승려’는 그 특유의 영화적 기법을 응용한 “롱테이크 퍼포먼스”(영화평론가 정성일)였다. 1,000년 전 불교경전을 찾아 인도로 간 현장법사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객석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40×20m의 벽 한 면을 통째로 개폐 할 수 있는 가변형 극장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극장 안과 밖을 잇는 풍경을 통해 독특한 감각을 선사하는 공연에 300여개 객석이 꽉 찼다.

9월 광주의 일몰 시간에 맞춘 공연은 닫혔던 개폐형 벽면이 완전히 열리며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시선은 열린 벽을 통해 보이는 극장 밖 로비와 로비를 잇는 계단, 짙푸른 하늘로 이어졌다. 나무계단에 앉은 행인들의 떠드는 소리, 풀벌레 소리가 이 작품의 배경음처럼 깔렸다. 석양이 진 하늘에는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빛났다. 당나라 승려로 분한 배우 리캉성이 1시간여 긴 잠을 자는 동안 대만 미술가 카오쥔홍이 나와 흰 종이 위에 거미를 그리다, 검은 칠로 그림을 뭉개버리다, 종국에는 흰 종이 전부를 검게 칠했다. 극장 바깥 어둠이 깔리자 리캉성이 일어나 검게 칠한 종이를 접어 새 종이 위에 다시 올린 후 그 위를 걷기 시작했다. 카오쥔홍이 구불구불한 선 모양의 ‘시간의 흔적’을 그리고 리캉성이 그 흔적을 따라 걷는 1시간여 동안 객석과 무대 조명은 점차 줄어든다. 이 구도가 끝나자 캄캄한 하늘과 밤 하늘만큼이나 어두운 극장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래 개폐형 벽면을 유리로 설계했던 예술극장은 빛과 소음 차단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유리벽을 블라인드 벽으로 바꿔 개막했다. 빛은 완벽히 차단되지만 미세한 소음까지 막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김성희 예술극장 예술감독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할 수준은 아니지만, 컨템포러리 아트 공연을 선보이기에는 무리가 없다”며 “공간을 다양하게 변경할 수 있어 예술가들에게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극장의 공간을 3개로 나눠 규모와 스타일이 다른 작품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다. 극장 안과 밖을 잇는 공연에 대한 평가는 관객마다 갈렸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차이밍량의 작품은 인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늘려 보여주는 ‘슬로우 시네마’의 극단을 보여주는데 이번 연극은 그 영화적 기법을 무대로 옮긴 것”이라며 “컨셉트는 재미있지만 극장 밖의 실제 풍경이 작품 의도와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당나라 승려’는 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을 맞아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문화전당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자리에 세워졌다. 지난 4일부터 시범운영을 거쳐 11월 25일 정식 개막한다. 재미 건축가 우규승씨가 ‘빛의 숲’을 테마로 설계한 이곳은 도청 본관을 그대로 둔 채 25m를 파고 내려가 건설한 지상 2층 지하 4층의 독특한 건축물이다. 주출입구에서 가까운 순으로 어린이문화원ㆍ문화정보원ㆍ문화창조원ㆍ예술극장이 늘어서 있는 건축물은 곳곳에 설치해둔 채광정을 통해 건물 내부로 빛이 쏟아진다. 설계 공모 후 10년, 국고 8,000억 원을 투자해 지은 연면적 16만㎡의 국내 최대 복합문화시설로 웅장하고 깨끗하고 쾌적했다. 세간의 우려를 낳았던 ‘그 넓은 공간을 채울’ 전시 공연 프로그램도 “아시아 문화마켓의 중심”(방선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이라는 목표에 걸맞게 세련된 작품들을 엄선했다. 특히 1945년 이후 아시아 예술 자료 10만여 점을 모으고 전시하는 문화정보원은 2만1,386㎡의 방대한 전시장을 “공항 컨셉트”(김선정 문화정보원 예술감독)로 설정해 14가지 주제로 나눠 감각적으로 펼쳐놓았다.

공연을 예술극장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예술극장 제공
공연을 예술극장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예술극장 제공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의 흔적이 공사와 함께 상당히 지워져 아쉬움을 남겼다. 수십 년 간 도청 건물에 선명하게 박혀있던 계엄군 총탄 자국은 말끔하게 지워졌고, 총탄이 박힌 도청일대 벽과 도청 본관ㆍ별관을 이은 건물은 공사과정에서 허물어졌다. 본관을 비롯해 별관, 회의실, 경찰청, 민원실, 상무관 등 6개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광주의 민주·인권·평화정신을 알릴 민주평화교류원으로 11월 완공, 내년 상반기에 문을 연다. 도청 본관 별관 회의실에는 아이보리색 페인트가 새로 칠해져 근대식 건물을 표방한 미술관을 연상케 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온전히 되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예술극장 극장2 개막작 ‘열병의 방’을 연출한 태국의 영화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개막작품을 준비하면서야 5ㆍ18을 알게 됐다. (아시아전당이) 광주정신을 흐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런 교류를 통해 세계 예술가들에게 5ㆍ18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말했다.

광주=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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