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돕는 콘텐츠 인기
질문 쉬운 익명 SNS '모씨' 10개월 만에 150만명 단골 소재
과잉 사회의 박탈감, 풍요 불구 심리적 결핍은 커져
대리만족·위안 통해 보상 기분
“20대 중ㆍ후반 모씨님,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으세요? 옷, 먹을거리 말고 현실적인 것으로요.” A씨가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뭘로 해야 할지 막막해 올린 글이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선택지와 관련한 다양한 생각들을 내놓는다.
“금액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소소한 이벤트나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
“신발?”
“현실적인 선물을 하고 싶으시면 직접 물어보시는 게 빠를 것 같아요.”
지난 3일 스마트폰 고민 상담 애플리케이션 ‘모씨’에 선택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고민 글이 올라온 지 5분만에 10여개 답이 달렸다. 이날 하루 올라온 질문 글만 수 백여 건이라 정확히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지난해 11월 개설돼 150만명이 이용 중인 앱인 ‘모씨’는 어려운 결정에 대한 조언,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익명 사회관계형서비스(SNS)다.
수많은 선택지가 도처에서 사람들을 압박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거대한 상담소가 돼 가고 있다. 결정을 돕는 상담이 SNS를 비롯한 온라인과 TV, 출판 분야의 주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익명 상담 앱 외에 결정 고민을 게임으로 승화시킨 앱도 인기다. 안드로이드폰용 앱 ‘폴릭’이나 아이폰용 앱 ‘유디사이드’는 ‘서핑 대 수영’ ‘중국 대 미국’ ‘소꼬리 대 영광굴비’ 식의 고르기 어려운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해 이용자 의견을 보여주는 앱이다.
상식과 감성을 앞세워 라디오 청취자들을 흡수하고 있는 뉴미디어인 팟캐스트 방송에서도 ‘고민 상담’은 중요한 키워드다. 방송 시작 5개월여 만에 인기 팟캐스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의 모토는 ‘5,000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다. 20회까지 방송에서는 ‘로또냐 연금복권이냐’등 일상적인 선택을 둘러싼 고민과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TV 예능 분야에서는 상담 프로그램이 대세가 됐다. JTBC의 토크콘서트 형식 프로그램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는 지난 2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후 5월부터 정규 편성됐다. 4월부터 방송 중인 SBS TV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춘기 10대 자녀와 부모가 감정의 응어리를 직접 마주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돕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출판계에서도 정보 홍수 속에 선택에 애먹는 독자를 겨냥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 각광 받고 있다. 선택의 어려움과 그 심리를 분석한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 선택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법’은 2004년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가 지난 6월 재출간된 스테디셀러다. 선택 과잉 시대에 생각과 인생을 정리하는 방법을 설명한 ‘정리하는 뇌’도 6월에 출간돼 꾸준히 팔리고 있다.
사실 소비와 관련한 선택 피로를 느끼는 이들에게 인터넷 카페는 중요한 상담소 역할을 해온 지 오래됐다. 다음달 이태원에 문을 열 예정인 ‘인생학교’는 다양한 선택지를 슬기롭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베스트셀러 저자로 이름 높은 스위스 출신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세웠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상담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한 국내에서 역술업이 성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술 분야는 연간 2조원 이상 되는 규모의 거대 산업으로 추정된다는 게 한국역술인협회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상담을 앞세운 콘텐츠가 주목 받는 현상을 풍요사회의 박탈감 문제로 설명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의식주 해결이 급선무였던 과거와 달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결핍이 더 커졌다”며 “시청자가 각 프로그램 사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관찰 치유 효과와 함께 현대인의 이 같은 심리적 고충의 조력자로서 상담 관련 콘텐츠가 각광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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