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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자기야, 등산가자”

입력
2015.09.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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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등산이야?”

“남자친구와 나 둘 다 살이 잔뜩 쪘어. 우리 이제 직장인 1~2년 차잖아. 남자친구는 갑자기 나온 똥배에 놀랐고, 지난 봄에 다리를 다친 나도 5㎏이나 불었지. 근데 서로 집도 멀고 직장도 멀어. 데이트라도 하려면 맘 먹고 칼퇴를 해야만 가능해. 접점이 없어. 주말에 만나면 차 타고 밥 먹으러, 영화 보러 가. 걸을 일이 없어. 나는 헬스장을 1년 끊어 놓고 한 달째 안 갔고, 남자친구는 점심 시간에 회사 주변 쇼핑몰을 걷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지.”

“그래서?”

“그래서 등산을 하게 된 거야.”

동갑내기 3년 차 커플 김지현씨와 박민식씨는 그렇게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등산 데이트’를 시작하게 됐다. 이들이 첫 번째로 정복한 곳은 2주 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 우연히 근처에 갔다가 ‘한번 올라가 볼까?’라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없던 운동화, 운동복까지 풀세트로 장만해 충동적으로 나선 것이 등산 입문의 도화선이 됐다.

그들은 그날로 등산의 기쁨에 매료되었다. 평소 흘려보지도 않은 땀을 한 바가지 쏟은 후에 한강 경치를 곁들여 컵라면과 막걸리를 먹으면서 “우리 등산으로 살을 빼자”라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민식씨의 집 근처 경기 안양의 수리산을 찾게 된 것도 주말마다 동네 산이라도 오르자는 여자친구의 제안 때문. 이들이 일요일 아침 9시부터 만난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높이 489m(정상 태을봉)의 수리산은 의왕의 모락산, 과천의 관악산ㆍ청계산 등과 함께 주변 시민들이 쉽게 찾는 말 그대로 ‘동네 산’이다. 어느 코스로 가든 탐방 시간이 왕복 4시간이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길도 평탄하다.

●기왕이면 스마트 등산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민식씨는 ‘산도 스마트하게 타자’는 주의다. 산에 오르기 전 스마트 시계로 등산 시간과 소모 칼로리가 체크되도록 설정한다. 얼마 전 사귄 지 1,000일을 맞이했다는 이들은 구글 지도에 그 동안 다녀간 데이트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산에 갈 때마다 등산 일지를 기록해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추억을 남길 작정이다. 애플리케이션은 GPS를 통해 다녀간 탐방로를 자동으로 지도에 그려주고, 특정 지점에서 사진을 찍으면 일지를 완성해 준다.

●등산은 사랑입니다

“왜 물도 챙겨오지 않았어?”

“그냥.”

수리산을 오르는 동안 두 사람은 유난히 말이 없다. 숨이 차서 말수가 적어졌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전날 밤 사소한 말다툼을 벌인 것. 오가는 내내 냉전의 기류가 가시지 않았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지현씨는 민식씨에게 열심히 칼집을 내온 ‘사과’를 건넨다. 운동을 했으니 몸 보신을 하자며 민식씨는 지현씨를 닭백숙 집으로 인도한다. 권커니 잣거니 막걸리를 들이켜고 나더니, 어느새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우리 가을에는 1박2일로 큰 산에 가보자.”

“그래. 단풍이 들면 가보자.”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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