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과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참석 등을 통해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한국 주도의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동력을 확보했고, 북한의 무력도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한중 정상이 함께 천명했다. 전승절 열병식이 열린 텐안먼 성루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양쪽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껏 과시했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장차 동북아 신질서 형성과정에서 종속변수가 아닌 주도국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국내에서 즉각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최고치인 54%로 상승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지난주 8ㆍ25 남북고위급 합의로 14%포인트 상승한 데 이어 또 한번의 도약이다.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다. 사실 이번 방중 결과는 성과 못지 않게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 양날의 칼이다. 내달 미국 방문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이 지나치게 중국에 기울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을 불식해야 하는 과제가 무겁고, 박 대통령의 항일 전승절 참석에 특히 불편한 기색인 일본의 입장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극진한 예우와 한중 밀착으로 한층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북한과의 관계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 텐안먼 열병식 행사에서 김일석 주석이 섰던 자리에 박 대통령이 서고, 자신들의 대표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한쪽 구석으로 밀린 것에 북한이 어떤 심정일지는 뻔하다. 벌써 북한은 한중 정상회담 중 박 대통령의 ‘북한의 비무장지대 도발’ 언급 등에 대해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이라고 비난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8ㆍ25합의 이후 우리 국방부 관계자의‘참수작전’ 등 자극적인 언급이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뒷통수를 쳤다”며 반발해왔다. 북측도 주민들 대상으로 딴소리해 합의의 진정성을 떨어뜨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일촉즉발의 대결상황에서 극적으로 대화국면으로 전환한 8ㆍ25합의가 남북 양쪽에서 훼손되고 취지가 흐려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를 주도적으로 헤쳐나가는 데 남북관계 진전이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중국 전승절 참석에 이어 내달 한미정상회담, 그리고 10월 말 11월 초로 예상되는 한미일 정상회담 등 일련의 정상외교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관계가 안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을 소외시키고 압박으로 일관하면 남북관계 안정과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 만약 궁지에 몰린 북한이 내달 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 전후로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핵실험과 같은 대형 도발을 일으킨다면 박 대통령이 계획했던 외교 구상도 통째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방중 성과에 자만할 때가 아니라 8ㆍ25합의를 토대로 남북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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