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봉과 이어진 우리 영토"
2007년 북극점 해저에 깃발 꽂은 러…북극해 연안 병력 배치 '얼음장막'
캐나다·덴마크도 "군사행동 불사"
북극항로 동상이몽
여름철 태평양-대서양 항로 생기자… 러시아·캐나다 지배권 강화에 박차
美, 온난화 내세우며 공조 강조… 국제 공영수로 만들기 의도 드러내
지구 상에서 가장 치열한 영토분쟁이 벌어지는 곳은 어딜까.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열도,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영토 분쟁, 인도ㆍ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영토 분쟁에 직접 당사자로 나선 국가의 숫자와 해당 지역의 규모로 놓고 본다면 정답은 ‘북극’에 가깝다.
강대국 세 나라, 한반도 6배 면적 놓고 다툼
지구의 북쪽 끝이자, 어느 쪽을 바라봐도 남쪽만 있는 북극점. 이 곳을 놓고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세 나라는 각각의 영토에서 뻗어나간 대륙붕이 북극점까지 닿아 있다는 논리로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거나, 제출을 검토 중이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새로운 얼음장막’(The New Ice Curtain)을 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거대 해저산맥인 로모노소프 해령이 자국의 ‘뉴 시베리안’섬에서 시작된다”며 북극점까지 포함해 120만㎢(한반도 크기의 약 6배)에 달하는 해역을 러시아 영해로 인정해달라는 내용의 자료를 지난달 4일 CLCS에 제출했다. 로모노소프 해령은 뉴 시베리안 섬에서 캐나다 엘즈미어 섬까지 1,800㎞에 걸쳐 있으며 폭은 60~200㎞이며 높이는 해저로부터 최고 3,300~3,700m에 달한다.
이에 맞서 북극점을 사이에 놓고 러시아와 바다를 접한 캐나다와 덴마크(그린란드)도 북극점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캐나다는 자신들의 북극해 연안 지역에서 시작한 대륙붕이 알파ㆍ멘델레프 해령과 로모노소프 해령을 통해 북극점 인근까지 연장된다는 입장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지난해 2억달러를 투입, 대대적인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 덴마크 역시 로모노소프 해령이 그린란드 대륙붕까지 이어지는 만큼 러시아ㆍ캐나다가 주장하는 것처럼 북극점이 자국의 관할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나라의 영유권 주장과 다툼은 문서나 과학조사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 행동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점은 우리 땅’이라며 2007년 여름 해저 4,200m 북극점에 러시아 깃발을 꽂았다. 또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북극해 연안에 총 7,000여명의 기동 여단 병력 배치를 시작했다. 핀란드 국경에서 45㎞떨어진 곳에 약 3,600명의 병력이 주둔할 기지가 들어섰고, 막대한 원유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야말 반도 인근에도 비슷한 규모의 기지를 준비 중이다.
러시아는 또 지난해 북극해에서 4만5,000명 병력과 수 십척의 전함이 참가하는 훈련을 예고 없이 진행했다. 무르만스크의 러시아 북해 함대가 주축이 된 훈련에는 전략 핵미사일을 장착한 잠수함도 다수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최근 러시아가 이 지역에 배치된 핵탄두 숫자를 꾸준히 늘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러시아 군사적 활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지난해 러시아가 기습 군사훈련에 나선 직후 스티븐 하퍼 총리는 러시아의 북극점 점령 가능성에 대비할 것을 캐나다 군대에 명령했다. 캐나다 정부는 또 레솔루트 만에 기지를 건설하고 과거 광업용으로 이용됐던 나니시비크 항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미국 내부에서도 북극해에서 군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최근 월스트리트 기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구온난화에 신경 쓰고 있지만, 북극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팽창 정책”이라며 연방정부 예산 통제를 위한 국방비 삭감 정책의 중단을 촉구했다.
석유ㆍ천연가스 위에 떠 있는 북극해
북극해 연안국의 치열한 영유권 분쟁은 북극 바다 아래 엄청난 규모의 유전과 천연가스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채 탐사가 이뤄지지 않는 막대한 양의 광물자원까지 감안하면 경제적 가치는 훨씬 높아진다.
미국 지리학회(USGS)에 따르면 북극해에는 지구상에서 개발되지 않은 원유의 약 13%(900억배럴), 천연가스의 30%(47조㎥), 액화 천연가스의 20%(440억배럴)가 묻혀 있다. 다른 광물자원을 제외하고 원유ㆍ천연가스만 따져도 북극해에 묻힌 자원의 가치는 172조달러(20경원)에 달하는 셈이다.
북극해 석유 관련 자원의 국가별 비중을 보면 러시아에 압도적으로 많이 묻혀 있다. 이 지역 전체 원유 매장량의 41%. 천연가스 매장량의 70%가 러시아 북극지역에 있다. 지금까지 61개 대형 석유ㆍ가스 매장지가 발견됐으나 이중 15개는 아직 생산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북극 일대에는 금, 은, 석탄, 몰리브덴, 아연, 다이아몬드, 우라늄, 니오븀, 철, 망간, 희토류 등도 매장되어 있다. 극지 광물탐사 개발에 적극적인 러시아가 이미 25개 광산에서 자원을 채취하고 있으나 아직도 대부분 미개발 상태다. 이 밖에도 북극해에서는 명태, 대구류, 가자미, 넙치, 대게 등 고급 어종의 수산물이 다량으로 잡혀 전세계 어획량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해 얼음이 녹아 여름철에는 러시아(북동항로), 캐나다(북서항로) 연안을 따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극항로가 가능해진 것도 북극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거리가 기존 2만100㎞에서 1만2,700㎞ 37%로, 운항일수는 30일에서 20일로 단축된다.
러시아와 캐나다가 최근 북극해 영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항로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알래스카 지역을 중심으로 영유권을 앞세우지 않고, 대신 인류 보편적 이슈인 지구 온난화를 내세워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북극항로를 특정 국가 영향권이 아닌 국제 공용수로로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마찬가지로 중국 해군 함정 5척이 지난 2일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 베링해에 사상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들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한편, 북극 진출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속내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2013년 북극 지방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하는 ‘북극 이사회’옵저버 자격을 획득, 온난화로 중요성이 커진 이 지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표면화한 북극해에서의 러시아와 서방간의 대립이 군사적 갈등으로 치닫고 이에 따라 미국ㆍ캐나다가 새로운 대 러시아 제재를 추진할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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