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시리아 탈출한 아일란
그리스 코스섬행 보트 전복돼
터키 해변서 주검으로 발견
사진 보도에 청원 운동 잇따르고
더블린조약 고수 英엔 비난 쏟아져
빨간 티셔츠와 파란색 반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바로 신은 검은 머리의 아일란 쿠르디(3)는 엎드린 채 얼굴을 해변 모래에 묻고 있었다. 수 시간 전, 에게해 한 가운데 난파선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의 손을 놓친 후 이곳 터키 유명 휴양지 보드룸(Bodrum) 해변까지 휩쓸려 온 후 줄곧 그대로였을 것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얼굴이 계속 잠기지만 아일란은 엎드려 꼼짝하지 못했다. 내전을 피해 고향인 시리아를 탈출, 그리스 코스(Kos)섬을 향하는 소형보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실었던 꼬마 아일란은 구명조끼 하나 걸치지 못한 채 이곳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2일 터키 구조대원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일란의 최후를 담은 사진이 보도된 후 난민의 비참한 현실을 애써 외면해오던 유럽인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자국으로의 난민 유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집해온 영국 정부를 향해 유럽인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의 죽음에 공분한 유럽인들은 곳곳에서 난민에 대한 관용적인 대처를 촉구하는 청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3일 인디펜던트와 가디언 등 영국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아일란의 마지막을 담은 사진을 1면 등에 주요기사로 다루며 “만일 여기 이렇게 죽은 시리아 꼬마의 사진마저 난민에 대한 유럽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인디펜던트) 와 같은 묵직한 질문들을 던졌다. 각자의 잇속 계산에 난민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속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촉구도 잇달았다. 특히 난민이 가장 먼저 발을 디딘 나라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더블린 조약’을 고집하며 난민을 ‘무조건 수용’하자는 입장을 밝힌 독일과 대척점에 선 영국 정부에 대한 날 선 메시지도 함께였다.
인디펜던트는 “이 한 장의 사진 만큼 적나라하게 난민의 실상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아이의 시신이 해변에 있는 모습을 신문에 싣기로 결정했다”라며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사연을 담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야당 정치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일제히 영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팀 파론 영 자유민주당 대표는 “끔찍함을 넘어서는 이 사진은 난민에 대해 침묵해온 캐머런 총리를 당장 일으켜 세울 경보음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신문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이 과거 난민들에 대해 “벌레 떼와 같다”, “사냥감을 쫓아 다니는 모습이다”와 같이 경멸스럽게 표현했던 사례들도 다시 들춰냈다.
가디언도 아일란 가족을 포함해 23명을 태운 소형보트 2척이 2일 오전 4시(현지시간) 전복돼 12명이 숨진 사연과 아일란의 사진을 소개하며 캐머런 정부를 압박했다. 신문은 “난민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통절하게 느끼게 했다”라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난 이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상기시킨다”고 보도했다.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자 3일 캐머런 총리는 “아이 사진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영국은 난민 사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비난의 화살을 집중되고 있는 캐머런 정부는 정작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난민을 위한 여러 청원 운동에 동참하는가 하면 트위터에서 ‘파도에 씻겨간 인간성(#Humanity washed ashore)’을 해시태그한 글과 아일란의 사진을 공유했다. AFP는 캐머런 총리의 난민 수용과 지원을 요구하는 영국의 시민 청원 운동에 3일 오전까지 4만명이 참여했으며, 인디펜던트의 독자 서명 참여 캠페인에도 12시간 만에 2만명이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하나 둘씩 밝혀지는 아일란 가족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더욱 자아내고 있다. 3일 아일란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는 터키 도간뉴스통신에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어느 순간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면서 “우리는 고무보트에 매달려 있으려고 했지만 배의 바람이 빠지고 있었고, 어두운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고 절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에는 캐나다 일간 내셔널포스트가 20년 전 캐나다로 이민한 아일란의 고모 티마 쿠르디를 인용, “아일란의 가족 4명이 개인을 후견인으로 하는 G5 이민자에 해당해 터키에서 신청서를 냈지만, 캐나다 이민부는 터키를 거친 신청 과정이 복잡하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밝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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