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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특수활동비가 뭐길래

입력
2015.09.0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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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상화 가로막은 핵심 쟁점

국정원 겨누고도 변죽 울리지 말고

野 정보위원 고백으로 문제 풀어야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특수활동비 개선소위 구성 협상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안민석 국회 예결위 야당 간사. 연합뉴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특수활동비 개선소위 구성 협상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안민석 국회 예결위 야당 간사. 연합뉴스

정기국회의 반쪽 운영이 길어지고 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나 대정부 질문 등 형식적 의사일정은 순조롭다. 반면 결산안과 임명동의안, 법안 등의 의안을 처리할 실질적 의사일정은 윤곽조차 흐릿하다. 이른바 ‘특수활동비’ 문제, 즉 예산결산특위 안에 특수활동비 제도개선 소위를 구성하자는 야당의 요구와 그에 대한 여당의 반대 때문이다.

여론은 야당 편이다. 한백리서치연구소가 지난달 31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5%는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 집행내역을 국회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필요 없다’고 답한 응답자 20.5%의 속마음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회가 독점적 예산ㆍ결산 심의권을 가진 마당에 국가기관의 예산 집행내역이 어떻게 국회 검증의 틀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아무리 ‘특수활동비’라지만,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쌈짓돈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인지.

특수활동비는 국가기관의 특별한 활동에 쓰이는 돈을 가리키는 통칭이다.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 지침은 ‘정보 및 사건 수사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규정했다. 근년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검찰 고위간부의 ‘사적(私的) 유용’ 의혹을 낳은 ‘특정업무경비’도 그 일종이다. 올해는 19개 부처ㆍ기관에 총 8.810억 원의 예산이 책정돼 지난해보다 100억원 가량 늘었다. 국가정보원이 4.782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방부 1,793억원, 경찰청 1,263억원, 청와대 266억원, 국회 82억원 등이다. 전체 예산 375조원의 0.2%에 불과하지만, 영수증 첨부 등 일반적 회계처리가 일부 또는 전부 필요하지 않아 정부 부처ㆍ기관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엄청난 액수다. 국회 상임위원장 특수활동비를 생활비나 아들 유학자금으로 각각 썼다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실토로 유용 실태 일부가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8월 임시국회 말미에 야당이 특수활동비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누가 봐도 국정원이 핵심 표적이었다.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사건의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의혹도 제대로 씻기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만큼 좋은 대정부ㆍ여당 공격 재료가 없었다. 여론의 호응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정기국회 개회 이후 야당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국정원’을 집어서 거론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나 다른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문제를 지적하는 등 변죽을 울리는 데 그쳤다. 그도 그럴 만하다.

국정원법 12조(예산회계)는 국정원이 예산을 요구할 때 국가재정법 21조에 따라 총액으로 제출하며, 산출내역과 예산안의 첨부서류는 제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2항) 했다. 더욱이 비밀활동비는 총액으로 다른 기관의 예산에 계상할 수 있으며 그 예산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심사하도록(3항) 했다. 이 조항과 국정원 예산 자체를 국가기밀로 취급하는 현실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에 대한 ‘여론의 편견’을 부추겼다고 볼 만하다. 그런데 바로 뒤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이런 (위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다른 기관에 계상된 예산을 포함한 모든 예산의 실질심사에 필요한 세부 자료를 제출하도록(4항)’하고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예산심의는 비공개로 하며, 정보위원은 그 내역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5항).’

지난해 4월에 개정됐으니,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국정원 예산 전체를 국회가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영수증 처리를 하고, 정보위에서도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 어렵고, 밝혀서도 안 되는 ‘공작비’만 관계자 서명으로 처리한다는 여당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정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의 진솔한 고백을 듣고 싶다. 국정원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라면 몰라도, 특수활동비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국회를 이대로 내버려둔대서야 최소한의 직업윤리에도 어긋나는 것 아닌가.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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